칼럼-착한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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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참 중요한, 그리고 좋은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 되지 머 그런거 너무 좋아하면 '기복신앙'이니깐 멀리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 속에도 여전히 '복'을 사모 할껍니다.
저도 복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때 두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만드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쁨이요,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자녀들이 그 부모를 사랑하고 기쁘하시는 일을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나 귀한 자식이겠습니까? 저도 이런 자녀를 두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인생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냥 버려 두실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생은 행복한 삶을 누려야합니다.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울하게 지내고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는 것.. 하물며 금식하는 것 까지 라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가 슬프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 부모는 더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지요.
어떤 사정으로 단식을 하면 ....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녀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 만큼 행복한 것이 없다고도 하잔습니까..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까지는 정말 어떤 성경 구절보다도 많은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들어와도 복이고 나가도 복이고 꼬리가 되지않고 머리가 되고..' 이 말씀이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보다 3배나 많은 분량으로 15절부터 '저주'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담아 주시는 것을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복주시는 그릇에 저주를 담고 그 저주그릇이 넘쳐 밥상에도 차고 밥상에도 넘쳐 온 집에 저주가 임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68절까지 이어집니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베스의 기도나 야곱의 축복을 더 좋아하나봅니다.
여기에 나오는 '복' 뒤에 있는 '저주'가  무서워서 쉽게 인용하지 못하나 봅니다.

저는 28장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만, '저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에도 '복'을 선택하지 않고 '저주'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말이 됩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그 저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과 같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들이 거것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거둔것입니다.
머리로는 원하지만 현실은 저주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스라엘이고 그들이 혹 우리가 아닐까 싶네요.

왜 끝가지 복을 유지하지 못할까요?
복을 좋아하지만 복을 얻기 위해 고난과 어려움, 당장 앞에 있는 즐거움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강당할 수 없기때문에 그 뒤에 있는 영광을 포기하더라는 것입니다(히12:2)
그것은 결국 복은 좋아하지만 결국은 저주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복을 좋아하지만, 처음에는 복을 선택했지만 끝까지 한길로 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이기도 합니다.
마음으로는 복을 좋아 하지만, 그것을 누리고 싶지만, 그래서 복을 선택했지만 시작은 쉽지만 끝까지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복을 포기하고 저주를 선택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 3:14)"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처음 잘 선택한 것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참으로 어렵기 때문에 복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받기를 좋아하지만 더 편한길, 더 넓은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저주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힘든길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쉬운길 편한 길, 넓은 길을 가길 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넓은 길은 저주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마 7:13-14) 그러나 생명의 길, 복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그 길을 찾는 이가 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주의 길로 그냥 생각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길이 바로 그 길일수도 있습니다.

누가 저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마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선택하고 저주의 길을 가게 됩니다.

복받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28장에도 쉽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저주받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그 하나님을 따라 공경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이 편하지 않는 길이고 고난과 부끄러움이 따라오고 끝까지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복받는 쉬운 법을 잠깐 내려 놓을 뿐입니다.

.... 그래서....

3배가 넘는 저주의 홍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  물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홍수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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