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십 여 년 전의 일입니다. 크리스천 기업가 한 분이 제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사업가로서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을 일구어 왔습니다. 그 수익의 일부는 국가의 법이 정하는 테두리 내에서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십 여 년을 계산해 놓고 보니, 그 환원의 혜택이 교회와 관련된 곳이거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백퍼센트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업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하는데 그 환원은 교회와, 교회와 관련된 부분에게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반쪽 짜리 환원의 혜택을 타계할 수 있을까요?” 이 고민을 들으면서 목회자로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끼리의 빛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한국 교회의 헌신과 투자의 대부분은 우리 안의 헌신이고 투자였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들어 우리를 비난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우리를 향한 공격 중 첫 번째는 “너희는 늘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너희들은 우리와 다른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뇌물을 줄 때 너희도 뇌물을 주었고 우리가 부정할 때에 너희들도 부정했고 우리가 거짓말할 때에 너희들도 거짓말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어떤 일을 하든지 너희의 이익이 있는 곳에만 투자하고 헌신한다. 너희가 한 일은 기도원이나 수양관을 짓고, 기껏해야 너희 이름으로 된 복지 사업에 얼마간의 자금을 지원한 것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실제로 너희들이 이 세상을 위해서 이 민족과 국가 단위를 공동체로 생각하고 일해본 적이 있는가?”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곳곳에서 금연 운동, 금주 운동을 필두로 한 국채 보상 운동이나 애국 운동을 하는 일로 활약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체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이 민족과 국가의 일원인 것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결집된 힘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유익한 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끼리’입니다. 조그마한 투자를 하면서도 너무 이기적인 자세로 이것이 전도와 어떻게 관련되는 가를 생각하고 심지어 교인 수를 불리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갖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민족 변혁의 시기인 이 때에 우리가 다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민족에게 참으로 갈급한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한가지 확신이 있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날 교육이 붕괴됨에 따라 자녀 교육에 혼란을 겪는 가정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대학 총장님과 함께 여행하던 중 신앙이 깊으신 그 총장님의 “목사님, 이제는 교수나 총장의 가르침이 지식 장사로 전락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시며 깊이 고뇌하는 신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 중 공부를 잘하는 몇 이외의 아이들은 마음둘 곳 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공부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선생님을 인격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희귀한 일로 바뀌어버린 시대입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불행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는 교실 붕괴와 우리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다시 사학을 일으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학들이 재정빈곤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60억에서 100억 정도로 재단을 내어놓는 고등학교가 많습니다. 이럴 때에 뜻 있는 교회들이 그 재단을 인수해서 민족의 장래와 바른 교육을 위해서 투자하고 사람이 바른 인격으로 자랄 수 있는 교육의 목표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축복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완전한 구성은 아니었어도 거창에 있는 산골 고등학교에 전영창이라는 그리스도인은 바른 목표를 세워 놓고 평생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그 열정이 지금껏 살아서 고등학교 가운데 특별한 고등학교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안산의 안산 동산 고등학교는 안산 동산 교회가 심혈을 기울여 재정을 뒷받침하며 바른 교육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점점 학교가 바로 세워져 가는 모습을 봅니다.
무너져 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며 한국의 큰 교회들이 기도하며 재정을 바로 투자할 때에 우리의 후대들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투자의 최종 대상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는 우리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동시에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나타낼 수 있도록, 일제치하에서 망국의 설움을 교육으로 달래면서 후세에게 목표를 주었던 믿음의 선조 들의 귀한 헌신을 좇아 이 민족 교육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2의 연희 대학이나 숭실 대학, 이화 대학을 오산 학교나 배제 학당을 다시 세울 때 이 민족 역사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귀한 투자를 한 것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이 해야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합니다. 많은 사학이 힘을 잃고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정성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결실 하는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n세대를 바로 키우지 않으면 이 민족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n세대들을 몸으로 부딪쳐 교육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등학교 교육을 다시 살리는 일에 교회가 나설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할 일을 하지 아니했던 한국교회가 우리 앞에 당한 할 일을 바로 알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고 이 민족은 다시 소망을 얻을 것입니다. 이 일은 후손들에게 가장 귀하고 값진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일어서서 이 땅의 초창기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그 일로 돌아갑시다. 한국교회 소망이 있습니다.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일하는 한 교회는 생명력을 가질 것이고 그 생명력은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십 여 년 전의 일입니다. 크리스천 기업가 한 분이 제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사업가로서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을 일구어 왔습니다. 그 수익의 일부는 국가의 법이 정하는 테두리 내에서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십 여 년을 계산해 놓고 보니, 그 환원의 혜택이 교회와 관련된 곳이거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백퍼센트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업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하는데 그 환원은 교회와, 교회와 관련된 부분에게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반쪽 짜리 환원의 혜택을 타계할 수 있을까요?” 이 고민을 들으면서 목회자로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끼리의 빛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한국 교회의 헌신과 투자의 대부분은 우리 안의 헌신이고 투자였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들어 우리를 비난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우리를 향한 공격 중 첫 번째는 “너희는 늘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너희들은 우리와 다른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뇌물을 줄 때 너희도 뇌물을 주었고 우리가 부정할 때에 너희들도 부정했고 우리가 거짓말할 때에 너희들도 거짓말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어떤 일을 하든지 너희의 이익이 있는 곳에만 투자하고 헌신한다. 너희가 한 일은 기도원이나 수양관을 짓고, 기껏해야 너희 이름으로 된 복지 사업에 얼마간의 자금을 지원한 것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실제로 너희들이 이 세상을 위해서 이 민족과 국가 단위를 공동체로 생각하고 일해본 적이 있는가?”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곳곳에서 금연 운동, 금주 운동을 필두로 한 국채 보상 운동이나 애국 운동을 하는 일로 활약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체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이 민족과 국가의 일원인 것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결집된 힘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유익한 단체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끼리’입니다. 조그마한 투자를 하면서도 너무 이기적인 자세로 이것이 전도와 어떻게 관련되는 가를 생각하고 심지어 교인 수를 불리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갖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민족 변혁의 시기인 이 때에 우리가 다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민족에게 참으로 갈급한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한가지 확신이 있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날 교육이 붕괴됨에 따라 자녀 교육에 혼란을 겪는 가정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대학 총장님과 함께 여행하던 중 신앙이 깊으신 그 총장님의 “목사님, 이제는 교수나 총장의 가르침이 지식 장사로 전락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시며 깊이 고뇌하는 신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 중 공부를 잘하는 몇 이외의 아이들은 마음둘 곳 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공부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선생님을 인격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희귀한 일로 바뀌어버린 시대입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불행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는 교실 붕괴와 우리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다시 사학을 일으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학들이 재정빈곤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60억에서 100억 정도로 재단을 내어놓는 고등학교가 많습니다. 이럴 때에 뜻 있는 교회들이 그 재단을 인수해서 민족의 장래와 바른 교육을 위해서 투자하고 사람이 바른 인격으로 자랄 수 있는 교육의 목표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축복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완전한 구성은 아니었어도 거창에 있는 산골 고등학교에 전영창이라는 그리스도인은 바른 목표를 세워 놓고 평생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그 열정이 지금껏 살아서 고등학교 가운데 특별한 고등학교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안산의 안산 동산 고등학교는 안산 동산 교회가 심혈을 기울여 재정을 뒷받침하며 바른 교육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점점 학교가 바로 세워져 가는 모습을 봅니다.
무너져 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며 한국의 큰 교회들이 기도하며 재정을 바로 투자할 때에 우리의 후대들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투자의 최종 대상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는 우리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동시에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나타낼 수 있도록, 일제치하에서 망국의 설움을 교육으로 달래면서 후세에게 목표를 주었던 믿음의 선조 들의 귀한 헌신을 좇아 이 민족 교육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2의 연희 대학이나 숭실 대학, 이화 대학을 오산 학교나 배제 학당을 다시 세울 때 이 민족 역사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귀한 투자를 한 것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이 해야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합니다. 많은 사학이 힘을 잃고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정성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결실 하는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n세대를 바로 키우지 않으면 이 민족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n세대들을 몸으로 부딪쳐 교육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등학교 교육을 다시 살리는 일에 교회가 나설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할 일을 하지 아니했던 한국교회가 우리 앞에 당한 할 일을 바로 알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고 이 민족은 다시 소망을 얻을 것입니다. 이 일은 후손들에게 가장 귀하고 값진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일어서서 이 땅의 초창기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그 일로 돌아갑시다. 한국교회 소망이 있습니다.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일하는 한 교회는 생명력을 가질 것이고 그 생명력은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