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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4 16:55

설교의 다양한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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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납법적인 설교(Inductive Preaching) :주승중 교수(장신대 예배와 설교학)


I. 들어가는 말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교인에게 "당신이 오늘 들은 설교의 형태는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교인들은 매우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무엇을 말했는지, 또 그들이 받은 은혜와 결단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묻는다면 그들은 아주 쉽게 대답할 것이다. 이처럼 설교의 형식은 설교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같이 무관심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지적한 대로 설교의 형식은 설교의 의미와 효과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할포드 루코크(Halford Luccock)는 "설교의 힘은 그것을 어떻게 치장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것의 구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1)고 한 것이다. 설교의 형태는 강줄기의 흐름에 있어서 강둑만큼이나 설교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모든 성경에 다 맞을 수 있는 설교의 형식은 없다. 다시 말해서 모든 본문에 적합하게 맞는 단 하나의 설교의 형식은 없다는 말이다. 설교의 어떠한 형식도 모든 설교를 위하여 맞는 것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설교의 형식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본문의 문학 형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문학 형식이 성경에 깔려 있는 본래의 설교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레독(Craddock) "설교의 형태는 신약성경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사학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해져야 한다"2)고 말한다. 그런데 지난 70년대이래 설교학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하나의 설교 형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귀납법적인 설교 형식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귀납법적 설교 형식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II. 몸 말

1. 귀납법적인 설교의 등장

귀납법적 설교가 설교학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남부 에모리 대학의 설교학과 신약학 교수였던 프레드 크레독(Fred Craddock)이 [권위 없는 자로서](As One Without Authority)라는 책을 1971년에 출판한 이래로 귀납법적인 설교는 설교의 형식을 위한 중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설교학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러 인식적이고 명제적(propositional)인 설교에 대한 몇 차례의 경고들이 주어졌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이르러 모든 권위가 부정되어지고 도전을 받게되는 시대적인 흐름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의 개념 중심의 명제 설교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다. 즉 1960년대에 히피들의 자유운동과 월남전쟁 반대 운동, 그리고 시민불복종 운동, 인권 운동 등의 자유의 흐름은 그동안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그 권위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전통적인 권위가 도전 받는 사회의 시대적인 흐름은 결국 전통적인 교회와 그리고 설교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즉 그동안의 개념 중심의 명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설교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학에 있어서 이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바로 크레독의 [권위 없는 자로서]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크레독은 그 동안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인 방법에 의지하고 있던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설교대신에 귀납법적인 설교를 할 것을 주장하였고, 그의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 이후의 설교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연역법과 귀납법

전통적인 설교에 있어서 연역법적인 접근은 일반원리에서 특수한 상황으로 적용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연역적인 설교는 설교초반부에 설교의 중심사상이나 명제를 제시하고, 본문에서 3개 정도의 대지와 또한 각 대지들을 보충해주는 소대지들을 가지고 그 중심사상이나 명제를 설명하고 증명하고 그리고 그것을 회중들의 삶에 적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연역법적인 설교에 있어서 성경은 신학적 아이디어와 진리의 보고로 이해되며, 성경 석의의 목적은 그러한 것들을 담고 있는 본문이라는 그릇에 이르러 거기로부터 중심 되는 사상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설교자가 본문의 중심이 되는 주제를 이해했다면, 설교자가 이 주제를 설교에서 다루게 된다. 즉 석의를 통해 발견된 본문의 주요 아이디어는 설교의 명제가 된다. 그리고 이 중심사상은 여러 요소들로 세분되는데, 그것은 설교의 대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연역법적인 설교의 장점은 짜임새 있고 메시지가 선명한 설교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설교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조직적으로 배열되기 때문에 어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설교가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회중의 입장에서도 그 메시지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교학자들은 "중심 사상"을 핵심으로 접근하는 이런 설교 방식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왜냐하면, 성경이 단순한 관념들(Idea)의 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깊은 감동을 주는 소설이나 연극, 혹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것들을 통해서 받은 감격스러운 경험을 하나의 "명제" 또는 "중심 사상"으로 압축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의 본문들 안에는 어떤 개념적인 틀 안에 다 짜 맞출 수 없는 분위기와 움직임들과 갈등들, 어떤 사실의 돌발적인 출현,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어떤 본문의 중요 개념에만 집착하는 연역적인 설교는 본문을 너무 얕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크레독은 전통적인 설교가 가진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점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귀납법적인 설교 형식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귀납법적인 방법은 특수한 상황에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해내는 방법이다. 즉 귀납법적인 설교는 특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관찰, 질문, 예, 경험들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일반적인 원리를 인도해 내는 설교이다. 크레독의 지적에 의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발견하고, 학습할 때에 귀납법적으로 행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설교도 귀납법적으로 전개되어야 회중들이 설교를 더욱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교자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이렇게 귀납법적으로 하고, 전달할 때에는 연역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레독의 말에 의하면 설교자에게 있어서 본문 석의는 본문에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한 감격적인 과정이다. 즉 설교자는 석의라는 과정을 통해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탐구하게 되며, 그 과정은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모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설교자는 처음부터 설교의 중심사상이나 명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본문을 묵상하며, 단어와 문법을 연구하며, 역사, 문학, 사회학적인 비평을 통하여 본문을 주석하고,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시험의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본문의 중심사상 또는 명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항상 귀납법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크레독은 지적하기를 문제는 설교자들이 이렇게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귀납법적으로 하면서, 정작 설교를 전달하기 위하여 원고를 작성할 때에는 연역법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의하는 단계에서 설교를 디자인하고 써 내려가는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석의 단계에서 발견했던 감격들이 다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즉 본문 석의의 귀납적인 감격이 설교의 연역적인 훈계에 의해 대체되어 버림으로 설교의 감격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크레독의 표현에 의하면 본문을 연구하는 석의 단계에서 "드디어 찾았다"를 외쳤던 기쁨과 감격이 설교를 전달할 때 "오늘 아침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에 관한 것입니다"라는 말과 같은 생명도 없고, 감격도 없는 소리로 뒤바뀌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설교자가 그가 택한 주제를 대지들로 나누게 될 때 그 앞 단계에서 경험했던 열정은 다시 가질 수 없다. 물론 그의 개념들이 위에서 아래의 청중들에게로 진리를 전달하는 사람의 개념이 되어질 때 더욱 그렇다. 강단에서 그 자신이 가졌던 발견의 단계를 다 시 재현하고 싶은 생각도 가끔 갖지만, 설교자는 그의 연구실에서 가졌던 것들을 강단 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신학교에서 배운 교훈들을 회상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간단 히 물리쳐 버린다. 그리고 나서 설교자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가 만약 좋은 설교자라 면 그는 그의 설교가 지루하게 되는 것을 단호히 배척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잡 은 서너 개의 대지들 사이에 유머나 인용구, 예화나 시, 등을 사용하면서 그의 논리적 인 설교를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려 깊고 포용력 있 는 설교자는 이 설교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것이다...."3)

그래서 크레독은 석의에서 발견한 중요한 메시지들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도 귀납법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석의의 과정에서 설교자가 귀납적으로 연구해 가면서 "아하, 이것이구나"라고 외쳤던 자리에, 청중들도 설교를 듣는 가운데 그 과정이 만들어져서, 그들도 역시 "아하"라고 외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들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발견하거나, 인생을 경험할 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항상 귀납적으로 행하기에 설교를 들을 때에도 귀납적으로 듣게 될 때 훨씬 더욱 효과적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설교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크레독의 이러한 주장은 설교학에서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설교학 이론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설교의 다양한 형식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서사 설교(설화체 설교, 이야기 설교), 비지시적인 설교, 대화체 설교, 그리고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지 않고 단일 주제를 다룸으로 산만하지 않게 하는 설교 등과 같은 새로운 형식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3. 크레독의 귀납법적 설교 방법론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크레독이 주장한 귀납법적인 설교 방법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간단히 말하면 크레독은 설교자들이 그들의 석의 과정에서 적용했던 창조적인 발견의 과정과 동일한 방법을 따라서 설교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설교자가 성경의 본문을 연구할 때, 그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미리 알지는 못한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그 본문이 의미하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 그 본문의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자가 경험한 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귀납적인 질문을 상상력이 풍부하게 재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청중들이 설교자가 성경 본문으로부터 듣고 배운 것을 정확하게 설교로부터 듣고 배운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래서 그 설교가 제시하고 있는 것을 서론에서 듣는 대신에 다양한 작은 조각들의 증거들이 놓여지고, 청중들은 설교의 결론에서 어떤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설교를 따라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귀납법적인 설교의 중심 이미지는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실로 청중들이 귀납적 설교의 결론 부분에 이를 때에 이 탐구의 여행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인데, 이 과정은 설교자가 아닌, 바로 그 청중들이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 어떤 해답(resolution)을 얻게 되면서 완성되어진다.
그러므로 귀납법적인 설교는 "I. II. III" 식의 대지들이 형성되는 대신에, 절정에서 터져 나오게 될 환호성 "아하!"를 향하여 집약적으로 세워져 나가는 작은 단편들 혹은 움직들로 구성된다. 결국 이 방법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실체를 경험하는 방식과 일치되며, 삶의 문제 해결의 행동이 자연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일치되도록"4)하기 위하여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크레독은 자신이 제안한 이 귀납법적 설교의 형태를 "문제 해결식의 행동"으로 이름짓는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설교자는 청중들이 특별한 문제를 해결해 가게 될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하며, 그들에게 그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설교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순서를 따라 그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귀납적인 설교의 결론은 설교자가 홀로 내리는 것이 아니고 회중으로 하여금 각자 자기의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열어 놓는다.
휴 리치필드(Hugh Litchfield)는 크레독과 또 한 사람의 귀납적 설교의 주창자인 랄프 루이스(Ralph Lewis)의 이론을 요약하여 귀납법적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5)

1) 회중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며 그리고 본문으로 돌아온다. 즉 상황이나 삶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본문을 향하여 간다. 회중의 삶의 경험을 말하며 그들에게 관계된 진리를 말하기에 청중들은 본문이 그들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듣게 된다.
2) 설교의 주제는 결론에서 언급한다. 귀납법적인 설교는 마치 신비스러운 것이 최종적인 장면에서 해결되는 것과 같다. "설교자는 자신이 결론에 도달한 그 단계들을 역추적해야 한다. 그리고 청중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6)
귀납적인 방법과 연역적인 방법의 차이는 마치 TV 드라마의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연역적인 방법은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드라마 초기에 시청자에게 알려주며, 드라마의 나머지 시간을 우리가 아는 살인자가 어떻게 잡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귀납적인 방법에 의하면 청중들은 살인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청중들은 누가 살인자인지를 찾는데 함께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의 최종 장면에서 청중들은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마침내 알게 된다.
3) 귀납적인 방법은 삶의 경험에 호소하며, 삶의 경험으로부터 논리적인 진리를 향하여 움직인다. 즉 특정한 적용으로부터 일반적인 진리를 향하여 움직인다.

크레독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이렇게 귀납적으로 설교를 전개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7)
1.
2.
A.
1.
2.
B.
I.

그리고 여기에 살을 붙이면 이렇게 할 수 있다.

1. 우리는 삶에서 불행하다
2.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
A. 하나님께 대한 반항은 우리를 불행으로 인도한다(돼지우리)
1. 우리는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2.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음을 깨닫는다.
B. 회개는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한다.
I.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신실한 자녀로 다시 받아주실 것이다.

크레독은 {권위 없는 자로서}의 뒷 부분에 부록으로 그의 귀납적인 설교 한 편을 싣고 있는데, 그 설교를 보면 크레독이 말하고자 하는 귀납적 설교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분명히 알 수 있다.8) 그리고 후에 그는 귀납적인 설교의 더욱 분명한 이론을 전개한 책을 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Preaching(Nashville: Abingdon Press, 1985)이다.9)

III. 나가는 말

어떤 설교의 형식도 성경의 모든 본문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여러 가지 설교 형식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히 본문의 문학형식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설교의 형식도 본문이 가진 문학형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 그 많은 설교의 형식 가운데 귀납적인 설교의 형식은 한 가지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간략하게 본 것처럼 귀납법적인 설교는 지금까지 거의 이 천년 동안 연역적인 설교 방식에 익숙한 설교자와 회중들에게 있어서 금방 소화할 수 있는 형식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설교의 요점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모호한 가운데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귀납적 설교의 형식은 세심한 주의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납적 설교의 형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한 오늘 현대인들에게 효과적인 설교의 형식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귀납적 설교는 회중들을 설교 안으로 초청하며,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joosj@pcts.ac.kr)


[미주]
1) Halford Luccock, In the Minister's Workshop (New York: Abingdon-Cokesbury, 1944), 118.
2) Fred Craddock, As One Without Authority (Nashville: Abingdon Press, 1971), 53.
3) Craddock, 124-125.
4) Craddock, 66.
5) Hugh Litchfield, "Outlining the Sermon," in Handbook of Contemporary Preaching, ed. Michael Duduit (Nashville: Broadman, 1992), 166-168.
6) Craddock, 57.
7) Craddock, 152-153.
8) 이 설교는 계지영 목사의 [현대설교학 개론](서울: 장로교 출판사, 1996), 108-115에 번역 수록되어있다.
9) 이책은 김영일에 의해 [설교: 열린 체계로서의 귀납적 설교방식] (서울: 컨콜디아사, 1989)으로 번역되었다. 귀납적 설교에 대해서 더욱 많은 것을 공부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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