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자료

2008.04.15 16:28

예화모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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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에 대하여
1. 구약과 신약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에서와 같이 자녀, 특히
   아들을 몹시 원했다(창15:2, 30:1, 삼상1:11,20, 시127:3, 128:3,
   눅1:7,28).
2.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속전을 지불해야
   만 했다(민3:40-51).        ·
3. 어린 아이는 때때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 되었다
   (삿13:2-7, 삼상1:11, 눅1:13-17,76-79).
4. 어린 아이의 훈련은 체벌을 동반한 엄격한 것이었다(잠22:15, 23:13,
   29:15).
5. 아이에게도 본받을 것이 많다(잠20:11).
6.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복종과 존경이 명령되었다(출21:17, 엡6:
   1-3, 골3:20, 딤전3:4,12, 딛1:6).
7. 어린 아이를 향한 애정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죽은 아들에 대한 다윗의
   사랑(삼하12:15-23)에서, 그리고 엘리야(왕상17:17-24), 엘리사(왕하4:
   18-37), 예수(마9:23-26, 막5:35-43, 눅8:49-56)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살려준 기록에서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8. 어린 아이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관심은 공관복음서에 많이 언급되었다
   (마18:1-14, 19:13-15, 막9:35-37, 10:13-16, 눅9:46-48, 18:13-17).
9. 예수는 어린 아이의 놀이를 알고 계셨다(마11:16).
10.성경에는 모세(출2:1-10), 사무엘(삼상1:20-3:19), 예수(눅2:7-40),
   디모데(딤후1:5, 3:14,15) 등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영향력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에도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
우는 것입니다.부룩스 아담스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써왔읍니다.  그가
8살 적의 어느날 일기는 이렇게 씌어 있었읍니다. "아버지와 함께  낚
시를 갔읍니다. 나에게는 오늘이 최고로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그후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서 아버지와 낚시 갔던 일을  잊지  못하고
그날 그가 아버지에게 받은 인상과 느낌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읍니다.

    그의 아버지 찰스 아담스는 훌륭했던 분입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
영국 주재 미국 대사로 활약하기도 하였읍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아버
지 찰스도 그날의 일기를 적었었는데, 그의 일기장에는 그저  "아들과
낚시를 갔다. 하루를 몽땅 까먹었다" 고 적혀 있었읍니다. 그러나  물
론 그날은 까먹은게 아니었읍니다. 그리고 그날의 소중함은  아버지에
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아들 브룩스에게 자기의 가
장 훌륭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날이었으니 더없이 잘 보낸 하루였던 것
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큰것입니다. 그걸 생각
한다면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직
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하게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
다. 오늘을 사는 아버지들께서는 자녀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그  중에
서도 가장 소중한 자녀들의 영적 양식을 마련해 주고 있읍니까?  그리
고 자녀들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읍니까? 또 자녀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읍니까?
                            -현대가정 교육 설교 핸드북,죠지 스윗팅-



*누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요?

  알 만코니는 왜 기독교 청년들이 세속적인 락 음악으로  전향하는지를
알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출판하는 [메디아 업데이트]에서 멘토니
는 저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세가지 락 음학으로부터  충족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락 가수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실제로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멘
코니가 지적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세
가지 기본적 필요성에 합치 되는데 그것은 어울리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과, 그리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기본적으로 이 필요한 것들을
충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그 빈곳을 어떤 것
들이나 또는 어떤이들로채우려 할 것이빈다.

명상 :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현명하게 투자한 시간이다.

*이화학당 최초 학생
  스크랜톤 대부인은 1885년 10월에 정동에 부지를 마련하였는데, 이는   한국 여성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스크랜톤   대부인이 여학교를 세운다는 소문을 듣고  몇
사람이  호기심으로  찾아왔으나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1886년  6월에야 정규학생 1명으로  학교
를  시작할수 있었다.  민비는 이 학교에 이화학당(이화학당)이란 교명을 내렸다.
  정규학생 1명은 스크랜톤이 정동 근처에서 발견한 아이였다.   성벽  위에남루하게 입은 모녀가
가마니를 덮고 신음하는 것을   보았다.   스크랜톤은인부를 불러 그 모녀를 자기  집으로 옮기게
했다. 이렇게 모녀를 정성껏 돌보며 치료해  준 결과 3주일 만에 건강을회복하였다.  그 어머니는
스크랜톤대부인에게 자신의 딸을 맡겼다. 대부인은  이 아이를  기르며  가르쳤는데,그 아이가 이
화학당 최초의 정규학생이 되었다.


*일등 학전
  김약연을 비롯한 개척자들이  만주 용정 명동터에 이상향  건설을   기초한것이 1899년의 일이
다.  김약연  이외에 김하규. 문정호. 남위언.  윤재옥 가문이 주축이 되었는데, 이들은  함북 종성
오룡천의 오현(오현)이라고  불리던 명문 실학파 유학가문의  후손들이었다. 을미사변과 동학혁명,  
청일전쟁등을 겪으면서 외세의 침탈 아래조국이 기울어져 갈 때 새로운 땅에서 민족적 이상향 건
설을 시도한 것이다.  이들은 훗날 민족과 기독교를 연결한  민족적 신앙 터전을 건설했음은 물론
무엇보다 교육에 의한 인재양성에  비전을 두었다.  따라서  황무지를 개척해 가면서 가장 기름진
땅이 발견되면  `일등 학전'(일등학전)으로 이름짓고 마을 공동의 교육기금화하여  후진교육에 이
용하였다.  이에 힘입어 각 가문은 사숙을 열었고 나중에는  이를 모아김약연 사숙의 규암재로 통
합, 육성했으며 마침내는  명동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명동학교는 훗날 유수한 기독교 학교로 성장했고 수많은 민족운동가를배출했다.


*하나님의 교육
  우는 아이를 유순한  말로 달래다가 듣지 않으므로 크게  야단쳤다.   그래도 그치지  않으므로
한두 대 때렸더니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격분하여 여러 대를 때렸더니 아이
는 더 크게 울며 몸부림을  쳤다.
이대로 두면 아이는  죽은 후에나 울음을 그칠 것 같았다.   나는 이  아이의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더욱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부족함이 너무 많다.  마음으로 깨닫고 회
개하였다.  인간교육의   어려움을깨달을 때에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교육이 얼마나  완전한
것인지  깨닫게 되고, 그은총의 무한히 크심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오! 주의 크신 사랑이여!(김교신)




*며느리반과 부랑아반
  초기 한국 교회에는 각계 각층의 여러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기 위한갖가지 그룹활동이 있
었다.  그 중 하나가  1915년 서울에서 조직한  며느리반(반)이었다.  사회적 관습으로  젊은 여인
들이 낮에 자유롭게   나다니기가힘들고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기때문에 시간을  내어  
성경공부를하기가 어려운 며느리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저녁 `며느리들을 위한  성경공부반'
을 열었다.  평균40여 명이 참가했고 2년 과정으로 창세기와 마태복음을 가르쳤다.
  또한 불랑아반도 1913년 서울에서 조직했다.  매주 교회에  오는길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길거리
에 있는 부랑아들, 즉  거지, 넝마주이를 데리고 와 점차 독자적인 반을 만들어  성경을 공부했다.  
이런방법으로  불신자  가정의많은 어린이들도 교회에 출석할 수 있었다.


*문맹퇴치와 교회
  구한말 백성들의 민생고는  극심하였고, 들어오는 새 문화로  인하여  서당교육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교육은 공백상태에 빠지는 위기에  부딪쳤다.   정부는 모든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
기에 민생고에  허덕이는  가난한가정의 자녀들은 교육받을 기회마저  상실하였다.  이 때 기독교
계 민족지도자들은 문맹을 퇴치시키는 것을 국권회복의 길이라 여기고  문맹퇴치운동을펼치게 되
었다.
  길선주 목사도 이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그는 평양  숭덕학교의  학회장으로 시무하면서  성경
야학을 개설하였다.   성경 야학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들과 교육받을 기회를 잃어  버린
아이들을 위하여 설릴된   야학교였다.  이 야학은 개교회에서 운영하였으며 원하는  사람들은 누
구든지 참여할수 있었다.
  이 야학운동은 후일에 성경학교  설립을 가능하게 한 동기가 되었으며, 민족 속에서  교회의 기
반을 다지는 수단이 되었다.


* 배재학당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학교를  하나 세웠을 때 왕이 그 이름을  `배재학당'이라고  지어 주
었다.  아펜젤러는 그것을  영어로  `Hallfor  RearingUseful Men'으로 표기하였다.
  배(배)의 본래 의미는(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나무  뿌리  주위에다  흙을덮는다는 뜻이므로 문
자적인 의미는 `기른다'는 뜻이요, 재(재)의 본래  의미는 집을 짓기 위한 재료이다.  따라서 집을
짓는 데재료가 필요하듯이 나라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전체 이름의 뜻
은  `유능한 인재를  기르기 위한 배움의 집'이다.  한국  정부가 인재 양성을  위해아펜젤러에게
학교를 세우도록허락한  것이다.  배재학당은  이름대로 한국을위해 일하는 훌륭한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배재학당의 교훈
  기독교 선교를 근본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 감리회 선교부 경영의  배재학당은 신학문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이 배재학당의  교훈은"욕위대자당위인역"(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
히 다른사람의 부림을  받아야한다)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0:28의 말씀인 "인자가 온 것은  섬김
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의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독교적인  교육이념이 진하게 배어있다.


*아동교육의 첫걸음
  아동을 교육하는 첫걸음은  말뜻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자기의  주변에서보는 사물의  이름과
자기의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생각을  의미있게  말할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은 아동
으로 하여금 각가지  다른  사물과생각을 분별하게 한다.  이것을  통해 아동은 언어에 대한 지식
을 얻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자기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물체라도  말을 들음으로
물체에 대한 관념을 얻게 된다.
  아동교육의 또 하나 방책은 읽는 것이다.  글을 읽음으로, 즉 책의  소개로 자기의 생활과 생각
을 넘어선 좀 더 나은  이상과 접촉하게되고,  그러한가운데 자기 주변에 있는 다른  아동보다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  독서를 하는 것은 독자를 더 넓은 문학의 세계로 인도한다.  독서를 하
지  않는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하는 범위 안에서만 살게 된다.  문자가 없는   야수와 문학이
많은 민족은 분간이 된다.   세계에 큰 세력이 있는 종교는  다신도들에게 책을  쥐어줌으로 다른
종교보다 인류문화에 위대한 봉사를 하게되었다.(이종모)


*아버지의 격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첫째 아들 필립  군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을 무
렵에 있었던 일이다.  도산을 아끼고 존경하는  동지와친구들은  필립 군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데
대해서 걱정하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도산의 이름을 흐려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
다.  이러한사정을 알고 있던 필립도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도산은 이런사정이 있
는 것을 잘 알고있으면서도 이 일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한동안표시하지 않고 지냈다.  필립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친구들의호의를 고맙게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그들의 견해가 옳
은 것이라고는 보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 도산은 필립을불러  이렇
게 말해 주었다.
  "나는 네가 영화계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네가 이 방면에   대한 소질과 또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오직  진실한  인물이되고 또  최선을 다해서 잘하라는 것이 나의
부탁이다."훗날 안필립은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배우로 성장했다.
아버지가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서 참고해야할 부분이다.

*욕쟁이 선생
  인천 별감 하상기의 후처로  들어간 하란사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으로 1 년간 일본 유학을 한 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처음에  상동교회의 영어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앨버튼슨과성경학교를  시작하여 오늘날 감리교신학대학으로 발전시켰다. 1910년 이화학당 대학부 교수를  지내면서 당시 이화학당 학생들은 그녀에게 욕을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미워도 욕, 예뻐도욕, 공부를 안한다고욕, 그저  욕을 입에 달고 살아 `욕쟁이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녀는 욕쟁이 선생이었지만 그 빈번한 욕만큼 교육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여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자모들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욕쟁이 선생에서 민족주의적인 사상과 행동을 가진 민족주의자로 변신한 초기기독교 여성을 대표하였다.



*월급을 받지 않고
  고당 조만식선생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부탁을 받고 오산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찾아왔을 때이다.  남강이 고당 선생을 붙들고 말했다.
  "이제부터 내 뒤를 이어서  이 학교를 맡아 주시오.""고맙습니다. 힘껏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선생의 조건이라면 무슨 조건이든지  좋소.""다름이 아니라 절대로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입니다."고당은 남강이  사재를  털어세운 학교에  월급을 받고 취직하러온 것이 아니라 남강을 모시고 나라 일을하려고 산골짜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이화의 체육선생
  김신실 선생은 이화전문의  체육선생으로 한국 체육 교육에 큰  공헌을  한분이다.  김  선생은
본래 초대 하와이 이민 교포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교사로 있다
가 김활란 선생의 초청으로 이화의체육선생으로 부임하였다.
  김신실 선생의 외모는 한국인이었으나 우리말을 거의  모른 채 이화에  왔기 때문에 서툰 말로
웃기는 일이 많았다.  체육시간에 오른쪽을  가리켜서"우라이트"라고 하며,  바르게 서라는 말을 "
다리 위에 골반을 놓고  똑바로서요"해서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스팀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  
라지에타가 일을 안해요"라고 한다든지달걀을 "닭의 애기"라고도 했다.
  김 선생이 한국에 처음 들여온  운동으로 유명한 것은 연식 야구와 사이클이다.  김  선생 자신
이 자전거로 거처하던 재동에서 광화문을거쳐 정동까지매일 출근하여 장안의 명물로 꼽히기도 했
다.  또 포크 댄스는  선교사들조차도 반대하던 것인데 김신실 선생에 의해 꾸준히 보급되었다.
  1957년 김신실 선생이 체육대학에 큰 공을  끼치고 은퇴하게 되자  졸업생들이 동상 건립을 추
진하였다.  그러나 김 선생은 그 기금으로 수영장을 세우도록 권햇는데, 이화여대의 `김신실 기념
풀장'이바로 그것이다.  그  후김 선생은 대한 YWCA의 총무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기독교와 교회의 임무
  기독교는 가난한 자의 종교요, 약자의 종교이며, 병자와 죄인의  종교다.
부자의 종교가 아니며, 강한 자의 종교가 아니다.  또 병없고 죄없다는  착한 사람의 종교도 물론
아니다.  자유 있는 자의 종교도  아니요,  부자유한노예를 해방시켜 주며 죽게 된 사람을 구원해
주는 구제 종교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 그것을 종교로 내세우고 그 진리를 말하며  신앙을주장하는 교회는 부자
와 강자를 옹호하는 단체요, 병없고 죄없는   선남선녀만이 모인 곳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
러므로 현대 교회는 기독교적 종교의 신앙과 진리는 말하나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
와는  모순된 반기독교적 단체다.  이른바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너희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교
우 한 사람을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더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자칭기독교대감독. 선교사. 신학자. 목사 등  성직에 있다는 교역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적 진리의 공적(공적)이다.(김형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흥사단에 입단하는 사람은 무실(무실), 역행(역행),  충의(충의),용감(용감)이  4가지 정신 속에서
그 정신을 통해서 살기를 서약한다.   이  서약은흥사단 단우와의 서약이다. 너와 내가 완전한 인
격을 이룩하자는 목적을 갖고 동맹하는 것이다.  흥사단 창설자  도산 안창호는 이 동맹수련을 아
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도산은 흥사단의 많은 청년을 가르치고 지도하는데  있어서 무엇
보다도 대화를 중요시했다.   `이것은 이런 거요'라든가   `이것은 이렇게 해야 옳소'하는  식으로
누구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예가   거의없었다.  "자김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대
화의  문을  열어상대방 스스로 결단하게 했다.  그리고 결단한 것을 꼭 실행하도록 했다.


*교육은 장기투자
  숭실대 9대 학장이었던 김형남박사가 <신동아> 1969년 2월호에  쓴  수필중 일부이다.
  "...회사에서는 사장실에 앉아서 보고를 듣고 분석하고 운영을  위해 단안을 내리면 되었지만 학
장은 학장실에서 학교 행정을  하지못한다.  교수들을찾아다녀야 하고 학생들과 친교하여야 한다.  
명령이 통하지 않고 행정   수집이 단순치 않다.  회사에서는 운영 방침이자주 변경될  수 있지만  
교육에있어서 변경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정책이 직효가  있으나 교육에서는 그 성과
가 곧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바 뚜렷하지 못한  장기투자이다.  공장의 제품이 나오면 곧 평가가
뒤따르지만 대학의 졸업생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에 있게  된다.  회사의 경우 불량품은  회수할
수 있지만  대학에 있어서는 졸업을 취소할 수 없다.  언제나 일회성을 가지고 있다."


*국권 회복의 길은 교육

  1906년 한서 남궁억  선생이 양양 군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은 고을에 학교를  설립코자
유지들을 불러놓고 "국권 회복의 길은오직 교육밖에  없습니다.  우리 고을에 학교를 세우십시다"
라고 역설하고 `현산학교 기성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대자가 많았고 4천 원의 모금은 달성했
으나 사람들이 자녀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학을 하면 눈이 노래진다더라", "양학을 하면 혀가 꼬부라진다더라", "난리가 나면 양
학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더라"등의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남궁억은 선한 일에 철두철미하고 적극적이어서 200여 명의  학생을모집하여 개학식을 성
대히 거행하였다.  학생들  가운데는 댕기를 땋은 아이들과 상투를 튼 어른들도  수두룩했고 나이
는 11세부터 23세까지였다.   학교에서는 수업료를받지 않고  오히려 교과서, 학습장, 연필   등을  
학생들에게제공하였다.  수업시간에는 국문. 한문.  영어. 일어. 역사. 지리. 수학. 이과. 음악. 체조
를 가르쳤다.


*그릇된 아이 사랑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생긴 일이다.   너더댓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데리고 탄  젊은 엄마
가 있었다.  아이는 연신 자리를  오르내리면서  수선을피웠다.  그러자 젊은 엄마가 단호한 목소
리로 "안돼"하고  나무랐다.   그순간 아이는 쥐죽은 듯이 얌전하게 자리에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
다.
  이렇듯 아이를 엄격하게 교양인으로 키우는 독일의 부모들과는 달리  "한국 사람들은 아이들을
너무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운다"는지적을  외국인으로부터  받았다.  실상 한국의  보모들은 공부
이외에는 만사가 오냐 오냐  하는식이라는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말하자면  맹목적인 자식
사랑이  넘치고 남음이 있다는 말이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 역시 그 못
지 않게 중요하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1939년 10월 한상동 목사가 밀양  마산교회에서 시무할 때이다.  그  교회에는 신앙이  좋은 박
수민 장로가 있었는데 신사참배를   강력하게  반대하는사람이었다.  자신만 반대하는  정도가 아
니었고  자녀들에게까지  신사참배반대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박 장로  아들이 상남보통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단체로   신사참배를 하러  갔다.  
이 때에 박 장로의 아들은 슬쩍 빠졌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선생이 호통을 쳤다.
  "왜 가지 않는거지?"
  "신사참배하기 싫어서요!"
  "뭐라고?"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죽어도 신사참배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비애국민이군!"
  "그런 건 전 몰라요."
  결국 그는 퇴학당했다.  그러나 박 장로는 아들이 퇴학당한 것을 도리어기쁘게 생각했다.
  "환난 때는 신앙을 위해 다 희생되는 법이다."


*기독교 교육의 모범
  김약연이 세운 규암재(규암재)는  1908년에는 명동서숙, 이듬해에는   명동학교로 발전하였는데,
이상설이 세웠던 서전의숙과 연합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기독교  학교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09년 4월 27일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재면이 신임  교감으로 있으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했다.   그는 평양 숭실학교, 서울 상동교회의  청년학원,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출
신으로서 명동학교에서의  성경 교수가 그의 취임  조건이었다.  그 때부터  `신.식.병'(신.식.병)을  
교육이념의 토대로 삼던  것을 `신.망.애'(신.망.애)로 바꾸고 본격적인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황의돈. 장지영. 박태환 등 서울   상동청년학교 교사출신들을 평교사로 초빙해
와서 기독교 민족교육이라는   이상을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독교적 민족교육은  훗날 일제에
의한  명동학교의 폐교 이유에서 그 성과가 여실히 나타난다.
  "명동학교는 지리 시간에 조선을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지도를사용한다.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사용한다.  철저한 항일교육을 시킨다.   입학시험 응시자 중 독립정신.민족
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학생은 탈락시킨다."


*자식을 바꿔 가르치라
  군산의 김필수 목사가 산골에서 목회를 할 때에 진안군 반송정이라는  곳의 한 주막에 들른 적
이 있었다.  그 주막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는데,새끼 두 마리를 낳고 뒷발과 허리를 상하여
거동이 불편한 처지였다.  주인은 고양이를 불쌍히 여겨 죽은 병아리를갖다 주었다.  어미 고양이
는  고기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몸이 아파사냥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는 저도 먹지
않고 새끼들에게도 주지 않고 소리내어 울었다.  그러자 이웃에  사는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나 그
병아리를 받았다.
  김 목사는 너무 이상해서 가만히 보니 어미 고양이는 자기가 병들어 새끼들에게 사냥법을 가르
치지 못하므로 이웃의  고양이에게제 새끼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병아리를 준 것 같았
다.  과연 이웃 고양이가 병아리를물고  나오자 새끼 고양이들이 따라나왔다.  이웃 고양이는  죽
은  병아리를한 번 물었다가  놓기도 하며, 살짝 치고 다시 물기도 하며 한 시간 동안  여러 모습
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병아리를 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병든 어미 고양이는 어미된  직분을 분명히 깨닫고 옛 선비가 말한  "역자이교지"(역자이교지),
즉 자식을 바꿔 가르치라는 말을 실행한 것이다.


*점진학교

  안창호는 독립협회가 해산된  후 고향으로 내려와 학교를 세우고이름을 점진(점진)이라고  붙였
다.  `점진'이라는 교명은 안창호의 실력배양주의, `힘을 기르자'는 그의 평생 신조의 첫번째 표현
이었다. 독립협회의 불꽃이   사라지고 나서 교육에 의한 준비 시기를 가지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도산은 `점진'이 천천히 나가지는 뜻이라기보다는 `나날이 조금씩  나가자.
꾸준히 쉬지 말고 나가자'는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신조에 따라 평생을살았다.  도산은 육십
평생 동안 나날이 새로운 점진 공부를 계속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는 "십년 생취, 십년 교훈"(십
년생취, 십년교훈)이란 말을 늘상고하며 살았다.
  점진학교는 후에 장로교에서 인계하여 일제시대에도 계속되다가 해방  후폐교되었다.


*참교육의 오산학교
  교육자 김기석은 1920년대 초반의 오산학교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도시에서 온 학생들은  오산의 흙 냄새와 개구리 소리가   한없이  정다웠다.   그들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재석산과 모안이의  아이포와 쑥섬으로 갔다.  재석산에 올라 서쪽  바다를 굽
어 보고 멀리북쪽과 남쪽을 바라볼때 고구려의 융성과 신라의 번창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
다.   오산은배움의 동산이요, 노래의 동산이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늘  노래가  흘렀다.  교가,
창립기념가, 동문회가, 운동가, 오산경가, 도산 안창호의   거구가, 한양가, 모란봉가도 불렀다.  찬
송가도 많이 불려졌다.
  방과 후에도 선생과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같이놀고 하여 스승과 제
자 사이도 친형제 같았다.  선생들은 학생들의  얼굴과이름은  물론 그 학생의 고향, 장기(장기)가
무엇인지,  성격이   어떤지까지알았다.  저녁길이나 운동장에서  만나면 마치가까운 친구 사이인  
양  서로정답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오래도록 함께 걸었다.  상급생 사이도   우정이 두터웠
다.  그러면서도선생과 제자는 참 존경과  신뢰로  결합되었다.
수업 중에는 선생에대한 존경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릴정도였다.   학
우들간에는 평생을 함께할 친형제 이상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없었다."


  *<감정지수> 이렇게하면 높아진다

  {EQ(감정지수)가 높은 아이로 키우세요.}.
  EQ는 대인관계의 지각능력이나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 정서적인 안
정성을 평가, 수치로 환산해낸 것이다. IQ(지능지수)와는 상대되는 개념. 기
독교가정사역연구소 송길원  소장은 {최근 구미  각국 여러 연구들이 개인
성공요소에서 IQ보다는 EQ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결론을 내놓
고 있다}며 {학력이나  지능보다는 마음의 특성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끼
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EQ 형성은 가정환경이 90%이상을 좌우
한다는 것이  송 소장 설명이다.  이 연구소는  연구결과와 실행프로그램을
종합, [자녀들의 EQ를 높이는 가정교육 10계명]을 제안했다.

  ①자녀들과 유머를 나눠라 ②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줘라 ③집안일을 거들
게 하거나 심부름을 하게  하라 ④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여라 ⑤자주 껴안
거나 볼을 맞추는  신체접촉으로 사랑을 표현하라 ⑥노는 것을 가르쳐주라
⑦힘든 과제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마라 ⑧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가까이 하고 격려하라  ⑨자녀들과 자주 여행을 하고, 다른  가족과 어울릴
기회를 제공하라 ⑩한 가지 깊은 소망을 가지게 하라.




*"아버지처럼 안될래요" 75%...청소년 설문

  우리나라 청소년 4명 가운데 3명이 아버지의 현재 모습에 만족치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청소년사업관은 11일  "지난달 중순 남녀 고교생 각 1백50명을  대상
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학생  가운데 75%가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 되길  원
치 않는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 이유로 [다른 일을  하려고](42%),
[가족관계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않아](24%),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
아](21%)라고 대답, 아버지의 직업이나 교육방식 또는 인품에 불만을 가진  것
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은 또 가장 원하는 한국의 모습으로 과반수(52%)가  [부정부패-범죄
가 없는 건전한 나라]라고 대답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22%)나  [정
치적으로 안정된 나라](14%)에 대한 선호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나이든 부모를 양로원에 모시는 것에 대해서는 72%가 [그래선 안된다]고  응
답했으며, [그럴 수도 있다]는 12%, [잘 모르겠다]는 반응은 11%였다.  부모와
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양쪽 모두  공경하지 않는

*아이큐와 이큐 / 정진경 교수

   초등학교의 한 어린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는 기사를 읽은 지가 두어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고등학교 학생
  두명이 성적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여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고 한다.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으랴. 우리 사회에는 언제
  부턴가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끊이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번에 죽은 아이들 중 하나는 일이등을 다투었다니 그의 자살은 `성적
  비관'이라기보다는 `성적 걱정' 또는 `성적병'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
  겠다. 정도의 차이는 있되 이런 성적병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의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퍼져 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심해진다. 그들에게 성적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예측하게 해주는
  지표다. 대학을, 그것도 일류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
  로 대우 받으며 살기에 유리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장



(이 글은  쇠귀 신영복 선생님께서 지난  96년 6월 23일, 나우누리  사회비평
동호회 [메아리] 제5회 회원의  날 행사에 초빙되어 강연하신 내용을 녹취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관념성  이름이  정대의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나이가 한 30인데
전과가 4범, 징역 사는  동안 기소중지건이  또 터져서 전과  5범, 이름이 정
대의입니다. 큰 대자, 옳을  의자. 대의에 살거나 대의에 죽거나 하라고 자기
어른들이나 누가 지은 것  같은데 나이 30에 전과 4, 5범.  참 딱하다는 생각
을 했어요.  그래서 훨씬 친해지고 난 뒤에 제가 물어 봤어요. "이름이 참 좋
은데 누가 지었느냐"고 그랬더니  "이름  얘기하지 말아요. 창피해 죽겠어요"
라고 그래요. "이 녀석아, 네가 창피한 거지, 이름이  창피하냐?" 그러니까 얘
기가 그렇습니다. 자기는  고아래요. 이름을 지어줄 할아버지도 없고, 자기가
한 살도 채 되기 전에 부모가 자기를 버렸대요. 그런데 그 버린
힝큰 제 : 외동아이 머리좋고 성취동기 높다"        

  *지도자의 말씨.........윤경남

  네살짜리 상희가 공부하는 아빠 엄마를 따라 미국에 건너갔다. 상희는  낯선
이국 땅에서 아침마다 눈만 뜨면 창문을 열고 노래를 불렀다.  [송아지]로부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이르기까지 접속곡인양 이어 부르곤 했다.
  "매일 아침 웬 노래냐"고 그애 엄마가 물었더니, "미국 와서 한국말을 잊어
버리면 안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은
민족정신의 무의식적인 계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나 가정에서 [우리나라의 기본언어이며  민족적주체
성을 높이고  민족정신과 민족혼을 기르는  모체인 국어]([우리말  큰사전])를
배우고 말한다.  언어학습 적령기인 어린 시절부터  우리말의 경어 반어  비어
등을 익혀두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 고치기는 퍽 힘들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사회의 지도자가 된 후에도  공식석상에
서 짙은 사투리로  말한다는 것은 [편견과 오만]의 극치이다. 영국사회에서는
말씨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을만큼 언어교육이
힝큰 제 : 짝을 찾기 위한 3원칙                    


*교육의 모성애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던   1863년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 구릉지대.한
여인이 갓난 아기를 안고 이곳을 지나다 눈속에서 얼어죽고 말았다.

   구조단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여인의 겉옷에 싸여 살아있는 아기를 발
견했다.여인은 아기를 살리려고 겉옷을 모두 벗어버린 것이다.

   이로부터 62년후 모성애로 살아난  이 아기는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그
가 바로 위대한 정치가로 손꼽히는 로이드 조지다.

제  목 : *.75자유의 여신상 모델
   뉴욕항에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거대한 조각 「자유의 여신상」
이 있다.조각가 바르톨디가 무려 20년간의 각고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가 이 상 제작에   착수했을 때 한 미술전문가는 훌륭한 사상가나 탁
월한 영웅을 모델로 만들라고 권했다.

   그는 여러 위인을   떠올렸으나 감동받지 못하다가 세계인의 가슴에 남
는 모델을 찾아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었다.그 모델은 바르톨디의 어
머니였다.

*적극적인 자녀교육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이시도  아이삭 라비는 어느날 한 기자와 인
터뷰를 가졌다.기자가  『어떻게 이처럼   영향력 있는 과학자가 될 수 있
었는가』고 묻자  라비는 『나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
다』고  말했다.

  잠시 옛생각에  잠기던 라비는 『그것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그가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교육이다.학교에서  돌아온
라비에게  어머니는 늘 이렇게 물었다.

   『얘야,오늘은 무엇이 궁금하니?』


*어머니가 키운 위인

   여섯살 된  어린이가 하루는 담임교사로부터 받은  쪽지를 들고 귀가했
다.어린이의 어머니는 그 쪽지를  들고 몹시 실망했다.그것은 소년이 학업
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통지서였다.그러나
어머니는 소년을 「명석한 아이」로 인정하며 꿈과 힘을심어주었다.

   이 소년이  훗날 발명가로 유명한  토머스 에디슨이었다.후에 에디슨은
말했다.『어머니의 따뜻함과  격려가 나를 발명가로 자라게 했다』

*어플루엔자

  아동심리학자인 레비 (John Levy) 박사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  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어플루엔자"(Affluenza) 란 말을 쓰고 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나는 많은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증세에 대한 용어로서 풍요증이라고 번역할 수있겠다. 이 증세는 자신을 못가지고, 죄책감에 자주  사로잡히며,  남을 믿지 못하고, 직장을 자주 옮기는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돈에 대한 지나친 의존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보고하였다. 이들은 도전을 받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A  자주지루함을 느끼고 모험심이 적다고 한다. 따라서 일에 대한 의욕도  강하지 못하다.
  아동정신과 의사인 써젼트 (Douglas Sargent) 씨는  부유한  집에서자라나는 소녀들이 대체로 자기가 남보다 더 아름답게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신의 미모를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동상담가인 하버스타트 (Harvey Halberstadt) 박사는  오랜  세월동안 부유한 가정과 벼락부자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교구하였는데 빨리 부자가 된 집의 아이들이 사회나 타인에게  적응하는  면이나 책임감이나 봉사정신에 있어서 묵은 부자의 자녀보다  훨씬 못했다고 한다.

*이해하는 마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밴드빌 대학 바로 건너편에 유명한 피바디 교육대학이 있었읍니다.  그 피바디 교육대학을 일으킨  피바디 선생님의 일대기 속에 퍽 감명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읍니다. 피바디 선생님은 젊었을 때에 국민학교 교사로  있었읍니다.
그가 국민학교  2학년생을 담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읍니다. 하루는 교육  계획에 따라 자기네 반 아이들에게 박물관 유물을 구경시켜 주기로  계획하였읍니다. 이 계획 때문에 피바디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위해서 미리 알아 두어야 했기에 사전 답사를 하였읍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을 지키고 있던 수위는 하루 종일 앉은뱅이로  돌아다니며 메모를 하고 있는  피바디 선생이 정말 앉은뱅이인 줄 알았읍니다. 그런데 나갈 때 보니까 벌떡 일어서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수위는
󰡒저는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앉은뱅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성한 사람이었군요! 왜 그렇게 무릎으로 앉아서 돌아다니십니까? 무릎을  그렇게 꿇고 다니면서 유물을  보시는 분은 처음 보았읍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읍니다. 그러자 피바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내일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 와 유물을 구경시켜 주려  하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키가 다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그 눈 높이에서. 즉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 시각에서 유물을 보았다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교사입니까! 이 피바디 선생은 아이들의 입장에 자기를 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시 가르치자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나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도덕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사는 얘기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라고 한다.
확실히 미국 사람은 어디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남에게 기죽지 말아라]
바로 이말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자란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고, 부모에게 덤벼들고,사장 앞에서도 큰소리를 친다.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나와서 불문곡직하고 고함부터 지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다.
어디에서든 기죽지 않을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한다,
기가 죽어도 안되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키워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한마디 충고가 겁이난다. 기죽지 않고 커왔기 때문에 당장 눈을 부라리고 덤벼들것이기 때문이다.
[기죽지 말고 살아라]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을 정말 죽이는 말이다.



* 남이 하니까...의 결말-교육
    여덟살 된 아이를 차에  태우고 가던 아버지가 신호를 무시한 채달리며
『다들 그렇게 한단다』라고 말했다.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삼촌이 찾
아와 형에게  소득을 속이고 세금을 덜 낼 방법을 의논하면서 아이의 어깨
를 툭 치며 말했다.『다들 그렇게 한단다』

   아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하루는 절도행각으로 정학처분을받
고 집으로  쫓겨 왔다.부모는 놀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고 소리쳤다.그때 아이는  고개를 똑바로 들며 말했다.

『다들 그렇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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