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자료

2008.04.15 16:28

예화모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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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무능력은

              전설에 의하면 교황 인노센트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 황청의 발코니[[ 있었을 때였다.  교황은 13세기에
교황권 을 크게 휘두른 사람이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대신
학자였다.  그 때 마침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로 돈 주머니 가
수송되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본 교황은 "저기 봐요.
이제는 `금과 은은 내게 없노라'고 교회가 말하던 그 런 시대는
지나갔소."  그러자 아퀴나스가 이를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앉은뱅이더러 `일 어나 걸으라'고
교회가 말할 수 있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교회의 낱말 뜻 / 성구
1. 히브리어
              헤칼 - 성전, 전, 성소, 신당, 전각, 궁, 왕궁.
              미크다쉬 - 성소, 성물, 거룩한 장소, 성당, 신전,
                         사원, 교회;예루살렘의 성전.
              미쉬칸 - 장막, 성막, 회막, 집, 성소, 거처, 처소.
              코데쉬 - 신의, 거룩함, 청결함, 신성함, 성소, 성당,
                       신전, 지성소.

2. 헬라어
              에클레시아 - 불러내다, 교회.

                 * 교회에 대한 성구 *


*교회의 비유  명칭
              엡4:12 - 그리스도의 몸    히12:23 - 장자의 총회
              엡5:22-31 - 그리스도의 신부
              딤전3:15 -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
              행20:28 -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
              히12:22 - 하나님의 도성   고전3:9 - 하나님의 집
              벧전2:5 - 하나님의 신령한 집
              엡2:22 -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히12:22-23 - 시온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행20:28 - 피로 값주고 사심  엡5:26 - 거룩하게 하심
              2:19-20 - 모퉁이 돌이 되심
              마16:16 - 교회를 세우심   엡5:25 - 사랑하심
              엡5:29 - 교회를 봉양하심


*교회의 임무(사명)
              행11:22 -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
              행11:26 -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일
              행14:23 - 교회의 일군을 세우는 일
              마28:18-20 -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
              딤후2:1-2 - 진리를 수호하는 것
              엡4:11-15 - 성도를 교육하여 성장케 하는 것



*정동교회 탄생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한 아펜셀라 선교사는 점차 늘어나는 교인들을
위하여 일정한 예배장소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교육
사업을 목표하여 교육선교사로 목사 안수를 받았는고로 1885년 8월 배재
학당을 창설하였으며 한국인을 위한 신교육을 시행하면서 그러던 중,
1887년 6월 24일에 배지학당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한 학생이게 세례를베
풀어주었다.
  아직 기독교종교가 국법으로 허락되어 있지 않은 사정하에서 그는 조심
스럽게 신자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한채의  건물을 사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오늘의 정동교회가 있는 그 자
리, 정동 34번지에 소재한 초가집이었다.
  아펜셀라 목사는 이 교회를 베델교회(Bethel Chapel) 라고 불렀으며 세
례받은 여인은 아펜셀라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고 교회관
리책임자로 있은 권서인의 아내였으며, 김 바울 (Parline KiM)의 조모가
된다.
  1년이 지난 다음에 아펜셀라 목사가 미국 감리교 선교본부에 보낸 또한
번의 정동교회 보고문서에 의거하여 정동제일교회 창설의 날은 1887년10
월 9일로 확정되었다. 정동제일교회 구십년사 ; 62)
  [금년 5월에 국왕의 명령에 의하여 예배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은  천주
교에서 강행한 명동성당 건축문제로 정부의 금교령이 선포되어, 이 문제
로 인하여 1888년 5월부터 9월까지 예배와 종교행사를 당분간  중단하였
던 사례를 말하고 있다.
  집회 수가 날로 늘어나 몇주일 후에는 교회당이 비좁아 옆집을  사들여
두 칸을 터서 한방으로 만들었고 약 3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기쁨을 만났던 것이다.
  2개월을 지난 크리스마스 예배 때에는 아펜셀라 선교사며, 설교 후에퍽
이나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나는 스크랜튼 박사와 힘을 합하여 한국어로 설교 전문을  준비하였습
니다. 설교문의 줄 사이에는 나혼자 읽을 수 있게 영어로 써 넣었습니다.
나는 이 원고를 가지고 설교하였습니다. 설교가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
지는 알지못하지만 그때 한국교인들이 열심히 들은 것만은 사실이었습니
다. 옆집을 사들여 확장하기는 하였으나 불어나는 교인을  수용하기에는
불편하고 협소하였다. 그러다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건축되어 이  두
학교의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음은 큰 다행이었다.
  정동교회 최초의 교인들은 이 두 학교기관에 관련된 사람들과 또한  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정동교회와 두 교육기관은 상호  유기적
인 관련속에서 초기시대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
해아였다.
  아펜셀라 목사를 서울 한곳에서의 베델교회 집회로만 만족할 수 없어전
주 어디에나 동분서주하면서 순회 전도를 속행하였다. 1888년 10월과 11
월은 황해도 해주로 갔고 이듬해 2월에는 남쪽으로 공주지방을 다녀왔고
8월에는 대구를 거쳐 부산에까지 원정하고 돌아왔다. 이때 아펜셀라목사
를 도와 순회전도에 동역한 사람은 뒤에 정동제일교회 제2대 담임목사가
된 저명한 한학자인 최병헌전도사였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로 방관적이거나 수동적이 아니었다.
[우리 형제들은 참을성이 있었고 열심을 다하여 전도하였다 그드른 지방
으로 여행하며 집회를 가졌고 장터에서나 서울의 거리에서 전도문서를파
는데 봉급을 받지 않고 일들을 하였다] 이는 아펜셀라 목사가 한 말로써
교인들은 믿기 시작하면 곧 그 신앙을 타인에게 증거하기에 바빳고 권서
인드른 보수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전도에 헌신하였다.  친구
들과 가까운 이웃에게 전도하였고 그 어디에서든지, 산간벽지에도  찾아
가 전도하였다.
  서울의 교인들은 아주 먼곳으로 평안도, 한만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전
도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특히 그지방의 사람들은 만주로부터 들어온 복
음서를 손에들고 있었으므로 피차 악수한 상황하에 복음의 전파는 더 급
속도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 최초의 조직교회 새문안 교회

  언더우드 목사가 한국에 들어온지 약 2개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때에
서울안에는 상당수의 신자가 생겨 있었으나 아직까지 교회당이 없었다.
언더우드 목사는 조직된 하나의 교회가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
였다.
  때마침 중국 만주로부터 로쓰 목사가 입경하여 한국 선교문제 전반에
관하여 협의하게 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알렌 의사도 참석하여 교회설
립에 관한 의견 교환에 있어 일치를 보았다.
(F.H.Harrington, God, Mammon and the Japanese, Dr H.N Allen and
Korea - American Relations 1884-1905,P41)
  언더우드 목사는 1887년 9월 27일 서울 정동 자기집에서 14명  신자를
모아 예배를 드리고 새문안교회의 출발을 기약하였다.
  그해 10월 7일에 언더우드 목사가 본국에 보고한 글에 교회 조직에 관
한 상보가 실려있다. [여기 사업은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 주일전
화요일에 장로 두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최초의 한국 장로교회를 조직했
습니다. 이 두사람은 지난 주일에 안수를 받아 취임했습니다. 우리는14
명의 교인들로 조직했는데 지난 주일에는 한 사람이 더 첨가  되었습니
다. 교인은 계속하여 증가한다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세례  신
청자 상당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전부는 열성과 심각성에 있어서 어
느 누구에게도 뒤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새문안교회 85년사, 48-49쪽) 언더우드 목사의 저택은 현재의 정동 13
번지였으며 옛날 돈의문 즉 속칭 새문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새문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태조가 도성을 쌓았을 때는 서대문과 동대
문은 일직선상이 있었으나, 세종 4년에 그 지점에 옮겨세우면서 새로낸
문이라하여 새문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헐리고 없는 새문은 구 서울
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새문안교회는 처음에 정동교회 또는 서대문교회라고 불렀다. 이  새문
안의 조선집인 언더우드의 사랑채에서 최초의 정식예배가 올려지고  이
것이 새문안교회의 기원이 된 것이다.
  천주교 대박해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때인지라, 무척 조심스러
웠고 또한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약식으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고 언더우드 목사는 회상하였다.
  감격스러운 교회 조직의 날에 빠져서 안될 인물이 로쓰 목사였다.
이날에 로쓰 목사는 만주지역 안에 있는 한국인 신도들을 전부  한국교
회 전체를 영위해야할 장로 장립에 관한 문제도 함께 토의하였다.
초창시기의 한국교회 사정을 참작하여 지역이나 자타 교회 관념을 초월
하여 지금까지 복음전파를 위해 업적을 쌓아올린 두 인물, 즉 백홍준과
서상륜을 아무 이의없이 선출할 것에 완전히 합의하였다.( L.G.Under-
wood of Korea,P149,새문안 교회 70년사,PP 22.63, 장로회신학대학70년
사 P 12)
  이 역사적인 한국교회 최초의 교회가 조직되던 날, 새문안교회 창설예
배에 한국교회 최초의 전도자인 백홍준과 서상륜, 한국교회 최초  선교
사인 알렌의사와 언더우드 목사 그리고 중국 만주에서 한국인에게 최초
로 복음을 전달해 준 로쓰목사 등, 이렇게 거대한 인물들이 한자리에모
여 뜻을 같이하였다는 사실을 새문안교회가 장차 한국장로교회의  어머
니 교회로서의 거보를 내딛게 됨을 빛나는 영광의 모습이었다.
  새문안교회는 선교의 교회라기 보다는 한국인이 스스로 전도하고 신앙
을 고백하여 이룩한 자생교회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목사라는 신분이었기에 그들은 신앙을 살펴보고  확
인하였고 그리고 목회적인 관심을 발휘하여 한국인 장로를 장립하기 까
지에 이르러 조직교회의 출현을 보게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새문안
교회는 자생과 선교의 아름다운 접목이었다고 본다면 아주 더 적합할것
이다.
조직된 새문안교회는 전국에 아직 하나밖에 없는 교회였기에 전국의 교
이ㅐㄴ들이 모두 여기에 소속돼 있는 사정이었다. 그러기에 멀리  북쪽
으로는 압록강 하류의 의주에 있는 신자들도 장로가 된 백홍준과  함께
그리고 서상륜이 이주하고 있는 서해안의 황해도 솔내의 교인들까지 서
울에 있는 새문안교회의 일원으로 언더우드 목사의 목회아래 있을 수밖
에 없었다.

* 건실한 교회의 특징                      

   1) 적극적 지도력        2) 일치된 교회
    3) 영감있는 예배        4)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교회
    5) 활기있는 세포 확장   6) 철저한 훈련
    7) 생활로 증거하는 교회 9) 선교 계획이 서있는 교회
   10) 적절한 기구와 조직  11) 기도 많이 하는 교회
   12) 생활로 연결된 성서 연구

*88년간 교회 출석                        

  살아 생전 교회를 가장 신실하게, 또 가장 오랫동안 다닌 사람은   누구일
까? 약간 오래된 수치이기는 하지만 1976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 아이
오와주 케오쿡(Keokuk)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성도  린퀴스트 여사인데, 그
녀는 1888년부터 88년  동안 꾸준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간 동안  크리스마스 예배나  부활절 예배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88년 동안  그녀는  교회의 목사가 15번 바뀌는  것을
보았으며, 8000번 이상의  설교를 듣었고 4000번 이상의  기도회에 참여했으며
29000번 이상의  취침기도를 드렸다.
    또한 린퀴스트 여사는 50년 이상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고  그녀의 제
자들 중 많은 수가 목회자가 되었다(Have a Good Day에서)
    열매맺는 삶,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녀처럼  성실하고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다.

*기억에 없어도                          

  한 신도가 말하기를 '나는 교회에 30년간 교회에 출석하여
  설교를 들었으나
  하나도 기억되는 것이 없다.'고하였다. 다른 신도는 말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30년간 음식을 먹었으나, 기억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은 것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설교 들은
  것이 기억됨이 없어도, 내 영혼이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하게 됨은, 설교
  를 때를 따라 들었기에 유지되고 자랐다."
  
*다른 교회로 가십시요                    

부천시 원미구에 있는 어느 교회 4월 3일자 주보를 어쩌다 보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주보 한쪽에 실려 있는 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는데 그 글을 열번도 더 읽었습니다. 다음은 그 글 입니다.
  
<부천 교구권 밖에 거주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이 지납니다.온 가족이 편안히 예배 드릴수 있는 길을
택하십시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작은 교회중 진리적 교회를
선택 하십시오.단번에 등록하지 말고 여러번 참석한 후 기도 가운데
선택하셔야 합니다.그런후 연락 주십시요.이명증서(移名證書)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간 어려운 발걸음으로 교회를 섬겨 도우신 사랑을 감사하여
잊지 않고 기도하며,아울러 지속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저희 남은 믿음의 어린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간 섬기시던 본 교회가 진리안에서 든든히
서 가기를 바라와서 믿음으로 기도해 주신다면 남은 교우들은
힘을 얻어 선배 신앙인 여러분들의 뜻을 이어갈 것입니다.
  새로 정한 교회에서 부담없는 신앙생활을 하려는 마음을 처음부터
갖지 마시고 항상 십자가 지려는 마음으로 여기서 보다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이제는 거리,시간적으로 능히 더 잘 감당할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불평없이 범사에 늘 감사하는 믿음으로 오로지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요.
  항상 하나님 편에서,진리편에서,교회 편에서,목사님 편에서
생각 하십시요.절때 무리(群)편에서 결단하지 마십시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이 글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이글의 의미를
께닫고 참으로 많이 놀랐습니다.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세밀히 헤아려 보며 더욱 많이 놀랐습니다.
이 그은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너무 먼 거리에서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부활절을 기해서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적을 옮겨서 그 교회로 출석하며 그 교회를 더욱더 잘 섬겨 주십사
하고 요철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게 당연하지 뭐가 놀랄 일이냐구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대꾸 할 말이 없습니다.옳습니다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교인들에게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라고 고ㅓㄴ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공식적으로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며 그 귀한 성도들을 떠나 보내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단을 내린 부천 W 교회.
문자 그대로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 입니다.

  최 용 덕/낮해밤달 1994.8에서
  
*첫 한국 교회 성찬식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성찬식은 1887년 10월 23일 감리교의 요람인
벧엘의 한 방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여성  세례자인 최씨부인(29살)과
최씨,장씨, 강씨, 한씨  그리고 스크랜톤 의사가 참석했는데, 집전
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하였다.  또한 기도문을 사용하고 모두 진지
하게 기도를 나누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생명의 떡을 나누며 모
두가 큰 은혜를 받았다.


*평양의 모교회                          

  개신교가 전래되기 시작한  때 평양에서 개신교의 근원지는 장대
현교회였다. 건물이 세워진 지  10년도 못되어 장대현교회는 네 교
회를 개척하엿다.  교인들은 은혜와 사랑이  넘쳤고, 일반사람들은
장대현교회를 가리켜 '은혜의 동산'이라고 불렀다.

  장대현교회는 해마다 구역 안에 있는 빈궁한 가정, 신자, 불신자
를 가리지  않고 가난에 시달리는 200여  세대를 구제했고, 직업이
없는 교인의 취직을 알선하여  무직자가 없게 했다. 그리고 지방에
까지 전도인과 전도대를 파송하여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열
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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