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호
빈 주먹으로 30년간 노력한 끝에 드디어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호가 된
그르드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임종시에 단 하나의 딸인 에렌을 불러 유언
하기를 "나는 너에게 1억 2천만 달라의 재산을 유산으로 준다. 그러나 너는
이것을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쓰지 않으면 안된다" 하였다. 이리하여 에렌
은 1억 2천만 달라를 상속받아 가지고 그 거금을 아낌없이 사회사업에 내던
져 불행한 사람들을 많이 구원해 주었다. 그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
회사업이라고 하지만 그 돈을 그렇게 써서 되겠느냐고 할때에 에렌은 대답
하기를 "아닙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유지이니 부자가 되어 돈의 덕을 모르
는 사람은 추악한 물질의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물질의 노예가 되
고 싶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미국의 7대 재벌의 말로
1923년 미국의 대 재벌 일곱명이 시카고 에즈워터 비치호텔에 모였다. 그
들의 부는 모두 합치면 미국의 국고보다 더 많았다. 여러 해 동안 신문, 잡
지에서는 젊은이들 본받으라고 했다. 그로부터
25년 후 그들의 처지를 조사한 신문, 잡지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
국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 사장 찰스 스랩은 죽을 때 알거지였고, 백만장자
밀수업자 아더 쿠텐도 알거지가 되어 낙망과 좌절중에 죽어갔다. 뉴욕 증권
거래소 사장 리챠드 휘티니는 오래도록 감옥생활을 했고, 대통령 각료까지
지낸 알버트 폴은 옥중에 있다가 겨우 사면으로 집에서 운명할 수 있는 특
혜를 받았다. 월 스트리트 증권가의 가장 큰 거물 젯시 리버모어나 국제개
발은행장 레온 프레이저도 자살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매업자 이봔 크
루겔도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었다. 그 거성들이 다 땅에 떨어져 깨어졌
을 뿐만 아니라 그 거성들이 모였던 시카고의 그 호텔조차 흔적도 없이 사
라져 버렸다.
*부의 낱말뜻
1. 히브리어
하일 - 재물, 장수, 군대, 힘, 용맹, 보화, 재산, 덕행, 현숙.
느카심 - 재산, 재물, 부, 부요, 부자,
아쉬르 - 부자, 부유, 풍부, 값진, 귀중한, 훌륭한,
르바야 - 부유, 부, 풍부, 다량,
르쿠쉬 - 물질, 물체, 실체, 본질, 부, 재물, 풍부,
쇼아 - 부, 풍부, 비옥, 부자, 윤택, 외침, 울음소리, 통곡,
2. 헬라어
플루티조 - 부하게 만들다, 부유케 하다, 풍성케 하다,
풍성, 풍요, 부귀, 재산.
유포리아 - 부요,
부는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풍부한 것을 의미한다. 일찌기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는 부의 척도가 대부분 노예, 양떼, 금, 은, 동, 철,
의복으로 이루어졌다(수22:8). 욥 당시에는 그의 아들들들이 집을 가지고
있었으나 재산은 주로 낙타, 나귀, 소떼, 양떼, 종이었다(욥1:3). 하나님은
이스라엘 초기부터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자"라고 가르치
셨으며(신8:16), 이웃에게 인색하지 말라고 하셨다(잠11:24). 예수께서는
부자를 비난하지는 않으셨으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부에 대한 성구
1. 부의 성격
하나님께서 허락하심 - 창26:12, 신8:18-19, 삼상2:7, 왕상3:13, 욥1:21,
정당한 노력의 댓가임 - 잠10:4, 12:11, 13:4, 22:29, 28:19,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심 - 잠19:4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 - 마6:24, 눅12:21, 16:13
부하려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에 떨어지게 됨 - 딤전6:9,마19:23,막10:23.
2. 부의 가치
즐거움의 근원이 됨 - 신12:7, 전2:24, 3:13.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수단이 됨 - 사45:3.
3. 부를 사용하는 것
하나님의 전을 위해 드림 - 대상29:3.
가난한 자를 도움 - 욥31:16, 시112:9, 눅12:33, 16:9.
선한 사업에 기부함 - 딤전6:18.
*사치가 극에 달한 여자
아르헨티나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그들을 무조건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람들이 좋은 것을 살 때마다 그녀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텔레비젼을 구입하고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녀는 이웃집 사람에게 지붕 위에 있는, 저 나무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텔레비젼을 사고 싶은 욕구가 충동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빚이 산더미 같으니 그 빚을 갚기 전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소.”하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가 되자 또 다른 이웃이 안테나를 지붕 위에 설치 했습니다. 이제 주위에 텔레비젼이 없는 집은 그녀의 집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대리접으로 가서 안테나만 사서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텔레비젼 수상기는 사지 못했습니다. 수상기는 없었지만 안테나만 꽂아도 그녀의 마음은 좀 가라앉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텔레비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요.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著<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中에서-
안테나는 신앙 생활의 외적인 것들입니다. 즉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순종의 측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아무리 엄격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수상기 없는 안테나 교인일 뿐입니다. 아들의 영이 없는 자는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고 계명을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하더라도 죽은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우리는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합니다. 그리스도 외에 무엇이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까?
*일본 여성의 사치
자신의 몸치장에 일본 여성만큼 공을 들이는 여성은 없을 정도다.
일본 여자들은 치장에 돈을 참으로 많이 쓴다. 여자들의 장신구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현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들고 있는 백은 루이비통에 시계는 롤렉스 아니면 샤넬, 카르티에다.물론 일본인들이 루이비통 헨드백이라면 사족을 못쓰고,또 돼먹지 못한 프랑스 점원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줄을 서서 그런 물건들을 사는 일본인들을 볼수 있지만 정말로 일본인들의 일류 상품을 향한 열정은 사람을 당혹케 할 정도라고 한다. 해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일본에 들르는 루이비통 본사의 부사장은 전 세계 루이비통 가방의 65%가 바로 일본 시장에서 팔리고 있음을 밝힌바가 있다.
그런 물건들을 구입하는 여자들이 대단한 부잣집 따님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보통 직장의 여자 사무원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참으로 기이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두달치 월급쯤 되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세린느 스카프를 두르고 반달치 월급은 되고도 남는 루이비통 헨드백을 들고 다닌다. 아마도 세계의 명품을 한 자리에서 모조리 볼 수 있는 장소는 일본의 백화점과 면세점 또는 일본의 지하철일 것이다.
그 아가씨들은 한달에 2만 엔씩 48개월 할부로 산다고 한다. 물론 화장품도 백화점 카드를 이용해 몇개월 할부로 구입한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면 월급이 모조리 월부와 카드 대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치장 비용으로 나가버린다.
멋내는 돈을 버느라고 한달 내내 또 고생을 한다. 그러 일본 아가씨들의 차림새는 그들이 그토록 얽메여 있는 루이비통 헨드백처럼 모두 같은 스타일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몸에 착 달라붙은 보디 콘셔스 라인의 미니 스커트,그리고 하이힐.일본의 거리에서 하루종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아가씨들이다.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옷만 다를 뿐 하고 다니는 차림새는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비싸게 주고 샀다는 자기 만족과 그 비싼 물건을 몸에 휘감으로서 만족하고 멋쟁이 대열에 끼었다고 생각하는 일본 여성만의 독특한 멋내기다.
명품을 몸에 지니고 귀족들이 입는 옷을 입었다고 귀족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귀족과 같은 품위와 고상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 멋내는 것을 보면 속은 다 낡고 구멍난 속옷을 입었을 망정 겉만 화려하고 돋보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요즘 형형 색색 에쁜 모양의 속옷 선전이 텔레비젼에서 자주 나오는가 보다. 속부터 멋쟁이가 되라고.......
*허영
제이콤이라는 작가가 쓴 [원숭이 손]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영국인 노동자가 여러 해 동안 인도에서 일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 동안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이상한 물건을 하나 사왔습니다. 그것은 마술사의 주술이 걸려 있는 [원숭이의 손] 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원숭이의 손]을 잡고 자기의 소원 세 가지를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국인 노동자는 이것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한 후 [원숭이 손]을 붙잡고 첫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200파운드의 돈을 다오.
얼마 안 돼서 낮선 사람이 찾아와서 200파운드의 돈을 주었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 돈이 무슨 돈입니까?
당신 아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기계에 끼어 죽었기에 부의금을 가져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그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원숭이 손]을 붙잡고
제발. 내 아들을 돌려주시오라고 애걸했습니다. 마침내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처참한 유령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고통하는 아들의 유령을 본 그는 마침내 세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내 아들을 편히 쉬게 해주시오.
이 이야기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영국인 노동자, 그는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술사의 주술이 걸린 [원숭이 손]같은 허영과 과욕에 사로잡혀 헤어나올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 손]을 통하여 물질과 명예와 향락, 인기와 장수하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주술 걸린 원숭이의 손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주술걸린 원숭이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입니다.
*성공의 뒤안길
성공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다년간 연구했던 한 심리학자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동료들에 의해 성공했다고 평가된 사람의 반 정도가 불행
을 느끼고 있다"고. 미국에서 복권에 당첨된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
인의 입에서는 "그 복권을 사지 않았더라면"이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
는 갑작스레 큰 재산을 얻은 지 2년 후 부도 수표의 발행 때문에 전과기록
까지 얻게 되었다. 복권이 당첨된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여 매년 연금을 받
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그 돈을 함께 나눠 쓸 사람이 없었다. 결혼은 파경이
이르렀고 가족들은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
*물질에 눈이 먼 사람들
월수 50만원인 보통사람에겐 現金 1억원은 실감이 잘 안되는 큰 돈이다.한푼도 안쓰고 200개월을 모아야 1억을 만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발명왕 에디슨도 無名 시절엔 가난했다. 그가 전자관계의 신발명을 했을 때 웨스턴 유니언사는 그에게 10만달러를 일시불로 현금으로 주고 발명특허를 사기로 했다. 백여년쯤 전이니 (90년기준)요세 화폐가치로는 백만달러는 될것이다.유니언사가 그 돈을 안겨주니 얼떨떨해진 에디슨은 실감이 안나 수정제의를 했다.
일시불로 하지말고 연 6천달러씩 17년간 분할해서 받겠다는 것이었다.
요즘 우리 국민들은 화폐단위에 불감증이 걸려있다. 부정이나 비리가 터졌다하면 그 액수가 보통 수십억 단위이다. 평생을 그 근방에도 가 볼 수 없는 그런액수가 예사로 등장하니 이른바 소외계층은 더욱더 심리적으로소외될 수밖에 없다.
신문에 보니 全대통령內外와 그 친인척이 全씨가 권좌에 있던 8년간 거둬들이거나 챙긴돈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 만으로도 1천4백44억8천3백50만원 이었다고한다. 이틀에 1억원씩을 재임 8년동안 모금을 했거나 횡령했다는 산술적 풀이가 성립된다. 5共권력이 얼마나 정치후진적 부패의 본보기가 될만한 것이었던가를 이 숫자가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
그 돈가운데는 검은 속셈이 배제된 깨끗한 돈도 간혹은 있었을 게다. 그러나 대통령부부와 그 친인척이 日當5천만원을 8년간 수금을 했으니 말썽이 아니 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5공비리를 캔다는 검찰은 전.이 부부에 대해서는 아예 시렁위에 올려 놓은 채 수사를 종결,특수부를 해체했다.
탐욕은 인간을 추하게 할 뿐이다.
*돈이 뭐길래
어느 패륜아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형수, 그리고 자기 조카까지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 1993년 8월중순에 있었다. 세상은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악해져 갈까하는 것이었다.
사건의동기는 간단했다. 원한도 없었고,(부모자식간에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뚜렷하게 죽일 이유도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갖고 있는 재산이 탐이나 그들 모두를 죽이고 만 것이다. 그들 모두가 죽어야 자기가 상속자가 될터이니까, 그래서 모두 자고 있는 틈을 타 둔기로 아버지부터 살해하고 주방에서 새벽 밥을 짓고 있는 어머니를 또 둔기로 내려쳐 죽이고 형도 형수도 조카도 다 그런식으로 살해한 뒤에 정원을 파서 그곳에 모두 암매장 해버리고 법적으로 상속 받을 날을 태연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면 이렇게 추할 수 밖에 없나보다.
*물질적인 부요함과 신앙
극동 방송국의 설교 메세지가 중국의 우리 교포들에게는 신앙의 젖줄처럼 되어 있는데 설교 내용 중에는 교포들이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만주 교포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설교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물질적 복을 받는다는 내용의 설교라는 것이다.
물질적인 축복이나 풍요함을 누릴 수 없는 상황속에서 그들은 당연히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만주교포들의 그러한 현실은 소위 기복 신앙 중심의 설교가 가장 인기있는 한국의 정황과는 아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성도들은 "축복"이란 말을 정신적인 축복이나 인격적인 축복 혹은 하나님과의 바르고 순수한 관계속에서 축복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물질적인 풍요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짙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도 물질적인 부요를 최고의 복으로 간주하는 세상의 가치관에 어느새 설득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우상 [돈]
생각하는 삶과 가치있는 삶을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할 때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도데체 우리가 사람사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동물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만의 안락한 삶의 추구가 다른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않될 것이다.
나는 각박한 세상 인심가운데서도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이들이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아이를 필요로 하는 가정에 입양을 주선해 주는 단체나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존경해 왔었다.
특히나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습속으로 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해외에 입양되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자랑하고 있지만 마땅히 해야할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해외 입양아들에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깊어가곤 했다.
그런데 얼마전 방송과 지면으로 그들의 모습을 대하고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입양 사업이 바로 수익 사업으로서 돈벌이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구나 국가 기관에서까지 용인하고 있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왜들 이러는가?
현대인의 우상은 바로 [돈]이라고 하더니 인간이 이토록 초라해 질 수 있는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희망마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회사업이라는 명목하에 행해진 물질 추구의 탐욕이 정말로 이웃을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일해온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분노를 일게 했을까?
-삼척중앙장로교회 문 대식 목사-
*탐욕에 눈이 어두우면
우리나라 돈으로 3억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의 가족이 벌이던 자축 파티가 살인극으로 돌변하여 일가족이 패가 망신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지난 25일 (93,9,25)스페인에서 있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경찰은 이날 현지의 한 사나이가 복권이 당첨돼 4천 9백만 페세타(약 3억원)를 타게되자 지난 23일 기족과함께 잔치를 벌이고 즐기던 중 가족에게 나눠 줄 액수를 놓고 17세의 여동생과 심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칼로 찔러서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크게 불행해 지고 말았다.
-93년9월28일자 경향신문-
*소유로부터의 자유
지난 4월에 TV 뉴스에서 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한 父子가 있었는데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의 땅의 일부를 자신의 명의로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돌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노발대발 분노하며 아들에게 내놓을 것을 종용했지만 아들이 끔쩍도 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재산 문제로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재판 결과는 아버지의 승소로 끝이 났다고 하지만 어쩐지 씁쓰름한 여운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부자간의 精도 재물에 대한 욕심때문에 오염이 돼야만 하는 요즘의 세상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질은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內村鑑三은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으며,
장식품은 살 수 있으나 美는 살 수 없으며,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으며,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입맛은 살 수 없으며,
유홍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으며,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불가능하며,
교회는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지만 아무런 행복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 않으며 , 물질은 공허감을 메꾸기 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공허감을 불러일으킬 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록펠러가 의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어리석은 부자의 예가 나와 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現代人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물질이 목적이 되면 소유에만 눈이 어두워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양심을 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취한 재물은 끓는 물에 떨어지는 눈(雪)과 같은 것임에 분명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물질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우리가 이땅에서 부요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부요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물질에 대한 뜻은 바로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가진 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될 때 하나님의 참 사랑이 가득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돈지갑을 으뜸으로 삼는자가 권력자다』라고 독일의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말했지만 그러나 나누는 사랑을 으뜸으로 삼는자가 진정한 권력자일 것입니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옵니다.
물질로 꽁꽁 얼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을 인하여 이 세상이 더 추워지는 것 보다는,나누는 사랑의 훈훈한 마음을 인하여 따스한 겨울을 만들 수 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누는 사랑,
바로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 하는 것은
그것은 마치 돼지의 평안을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며,
또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고급 승용차에 실려가는 것을 부러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魔)의 보석
석기시대에 뼈로 만든 목걸이나 엘리자베드 테일러가 1969년에 파리의 보석상으로부터 사들였다는 1백만 달러짜리 `물방울 다이아'나 자신의 용모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거나 자신의 부(富)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단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시 사회에서 보석을 몸에 지녔던 이유는 전혀 달랐다. 어느 특수한 보석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별의 마력(魔力)을 중화(中和)시킨다 하여 점성(占星)에 의한 특정의 보석을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요즈음 탄생석(誕生石)의 관습이 바로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약(藥)으로 보석을 이용하기도 했다. 유리를 가루내어 먹으면 뱀에 물렸을 때 해독제가 되고, 토혈(吐血)에는 산호, 숙취(宿醉)에는 자수정(紫水晶)이 처방되었다 한다. 우리 옛 선조들은 담(痰)에는 호박(琥珀)을 가루내어 먹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모든 보석이 특효를 내는 병명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가루낼 수가 없으면 그 보석을 목걸이로 만들어 차고 다녀도 그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보석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병자(病者)로 경원하거나 피해 다녔다 했으니 보석 없는 가난한 사람들 속시원하게 하는 시대도 있었다.
진주(眞珠)는 `슬픈 눈물의 결정(結晶)'이라 하여 로마시대 이후부터는 불길한 보석으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죽기 며칠 전 귀걸이에 박혀 있던 진주가 우연히 포도주에 떨어졌다는 데서 진주 불길설(不吉說)이 비롯됐다 한다. 혹은 로마 사람들이 너무나 진주 사치를 했기로 그 사치를 금지시키기 위해 퍼뜨린 소문이라고도 한다.
루이 14세가 끼었다는 세기적인 고가(高價)의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 반지를 물려받은 사람이면 예외없이 자살하거나 암살당하거나 사고사(事故死)를 당했다 한다.
지금 그 저주받은 보석은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워싱턴 스미드소니언 연구소에서 소장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비취나 수정 등 빛깔있는 보석을 몸에 지니면 남편의 정력을 죽인다는 터부가 있어 금은 사치는 해도 보석 사치의 풍조는 없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석에 이 같은 주력(呪力)이나 마를 인정했던 것은 비생산적인 부의 축적에 대한 민심의 저항이 작용했다고 본다. 속칭 `대도(大盜)'사건으로 노출된 보석들도 결과적으로는 그 범주에서 예외가 아닌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돈의 인간함수
작가(作家)의 이름은 잊었지만 `돈불(錢火)'이라는 19세기 독일의 단막극이 우리 나라에서 상연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죽자, 바로 그 시체 곁에서 계모와 아들과 딸이 유산 다툼을 한다. 그 다툼은 아버지 살았을 때 화목했던 서로의 사이와 대비되면서 전개돼 나간다. 끝내는 금고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지폐를 한 장 씩 꺼내어 불태워 버리는 것으로 화목을 되찾는다. 돈 불에 손을 쬐며 `참 따습다'고 하던 말이 퍽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에도 돈을 버리고 `인간'을 구제한 사례(史例)가 적지 않다. `일사유사(逸士遺事)'라는 근세 문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울 사는 김학성(金鶴聲)의 어머니는 어느날 우연히 처마 밑에서 은(銀)이 가득한 가마솥 하나를 발견했다. 이를 보고 놀란 어머니는 다시 그 자리에 깊이 묻어 두고 이사를 해버렸다. 과부에다 열 살 안팎의 형제를 기르고 있는 가난한 어머니로서 대단한 작심이 아닐 수 없다. 늙어 임종(臨終) 직전에야 형제를 불러 놓고 말했다. `재(財)는 재(災)다.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하는데, 두 아들이 아직 어릴 때에 의식(衣食)의 안일(安逸)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가난하게 자라지 않으면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그 재물을 단념한 것이다,' 가마솥 가득한 그 은(銀)을 버리고 자식 형제를 구제해 낸 것이다.
`역옹패설'이란 문헌에도 돈을 버리고 형제 간의 `사이'를 구제한 사례가 적혀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형제가 길을 가는데 앞서 가던 아우가 크고 작은 황금 두 덩이가 든 주머니를 주워 그 중 작은 금덩이를 형에게 주었다. 양화진(楊花津)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가던 이들 중 아우가 갑자기 그 금덩이를 강물에 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괴이하게 여기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형님을 사랑함이 매우 돈독했는데, 지금 금덩이를 갖고 보니 사특한 마음이 생겨 그 우애에 금이가는 듯 합니다. 이간질하는 상서롭지못한 물건이라 강에 버린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네 말이 옳다'하고 역시 금을 강물에 던졌다. 근간 일본에서 대나무 숲에 억대의 지폐가 버려져 있어 세계적 화제가 됐었는데, 버린 장본인이 나타나 하는 말이, 돈 때문에 자살하고 배신하고 사기치는데 환멸을 느낀 끝에 `인간'을 구제하고자 버렸다 했다. 돈과 인간의 함수에 뭣인가 느껴지게 하는 버림이다. 지난 주말에는 미국 텍사스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한 차에서 달러가 흩날리는 바람에 이를 줍느라 멈춘 차량 행렬이 1km를 메웠다던데, 이 돈 바람도 그런 인간 함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89/6/14
*어느 장애자의 아사(餓死)
공양미 3백 석에 팔려가기 전날 밤 심청이는 눈먼 심봉사 동냥다닐 때 메고 다닐 헌 전대 구멍난 걸 꿰매 놓고, 잠든 아버님의 얼굴을 내려보고 복받치는 울음을 참느라 목이 멘다.
'내가 아예 없었던들 다니기에 길이 익고 얻어먹기 투가 나서 아무 염려 없으련만 6,7 년간에 출입 한번 없었으니 다리에 힘이 없어 평지낙상(平地落傷) 종종 할새 자식 없는 저 봉사 누가 일으켜줄꼬.'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버지 장애자가 그를 돌보고 거둬 먹이던 18 세의 아들이 절도 혐의로 구속되자, 보름을 굶은 끝에 절명한 인륜(人倫) 사고가 영주에서 일어났다. 외아들인 홍군이 잡혀갈때의 심정은 심청이 심봉사 놓고 떠나가던 전야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봉사처럼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우울한 문제들이 가로놓였기 때문인 것이다.
생이별 사실을 안 심봉사, 올려 뒹굴 내리뒹굴 마른땅에 새우 뛰듯 숯불에 자반 뒤집듯 하는데 심청이 데리러 온 뱃사공들, 이를 슬피 여겨 쌀 20 섬과 돈 1 백냥을 삼백 섬 외에 따로 심봉사의 의식 밑천으로 주고 간다.
홍군 아버지의 심정도 심봉사와 똑같을 텐데 의식할 밑천은 커녕 의식할 거동의 채비도 없이 잡아간 법망의 무자비와 비인도가 가슴에 아프게 와닿는다.
심청이 떠날 즈음에 동네 처녀들 몰려와 심청이 손을 잡고 울어대자 '전일의 의(誼)를 안 잊거든 내 집에 종종 들러 불쌍한 우리 아버지 등이 가렵거든 이 잡아주고, 병들거든 약 달이기 가끔가끔 하여주면 천신이 감동하여 복을 아니 받겠느냐'하며 총총히 떠나간다.
홍군에게도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을 텐데 어찌 종종 들러서 우리 아버지 목마르면 물 떠드리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드리라느니, 천신이 감동하게 할 여건이 돼 있지 못했던가 말이다. 현대 사회가 인간으로부터 정을 증발시키고 이해에 오그라질 대로 오그라진 미이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심청이 없어진 뒤에도 심봉사는 세간살이가 이전보다 풍족하여 동네 과부들에게 재물을 과시하며 엽색질까지 한다. 홍군 아버지는 거둬 먹일 손발이 없어 보름 동안을 앉아서 굶다가 서서히 탈진하여 죽어갔고......
인간다움을 상실한 물질 만능의 현대, 그 현대를 사는 현대인의 미래상을 그대로 구현한 죽음만 같다. 심청이 시대에 비해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교통이 발달하고 가전 제품이 범람하고 의식주가 풍족하고 GNP가 상승하길 몇백 몇천 배인 오늘날, 현대가 심청이 시대보다 살기 안 좋다는 망상(妄想)을 고발하는 죽음이기도 하고...... 그 더욱 장애자의 주간에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92/4/29
*복만 좋아하는 현대인
전 가족이 기아에 허덕이다가 끝내 가장이 먼저 굶어 죽었다. 아내는 그 순간 정신 착란을 일으켜 자녀들을 팽개쳐버리고 수백리나 떨어진 구호소를 향하여 마치 몽유병자와도 같이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구호소에 도착한 여인은 구호 음식을 먹고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뱃속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자 위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실화다.
굶주린 사람에게 풍성한 음식이 주어진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축복임이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이 순간적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어리석음
여씨춘추에 등장하는 얘기다
백주 대낮 시장 한 복판에 벌려놓은 금은방에 놓인 황금덩어리를 넋빠진듯이 쳐다보고 있던 한 사내가 느닷없이 그것을 집어들고 도망을 쳤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시장바닥에서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갈 수가 있겠는가? 도적은 마침내 붙들려서 재판관 앞에 섰다. 도적에게 묻는다.
시장 바닥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그것을 도둑질 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고, 이 말을 들은 도적은
“그때 제 눈엔 황금만 보였지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
역시 인간이 지닌 탐욕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중국우화다.
*하이에나
하이에나는 아프리카와 인도에 사는 동물이다. 낮엔 숨어 놀다가 밤에는 죽은 동물을 청소하러 다닌다.사체고기만 먹어 치우므로 별명이 사바나(荒原)의 청소부.
우는 소리가 사람 웃는 소리와 비슷한게 기이하다. 弱肉强食,죽이고 먹히는 비정한 동물 세계를 보여주는 기분 나뿐 짐승이다. 이가 단단해 뼈도 남기지 않는다는 식성조차 섬뜩한 동물이다.
94.9.27일 새벽 서울 영둥포에 난데없는 하이에나가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새벽 야채 시장을 나가던 상인 박미영씨가 횡단보도에서 택시에 치였다. 때마침 그녀의 몸에서 야채값으로 넣어둔 돈다발이 몸에서 풀려나와 거리에 나부꼈다. 몇명의 하이에나의 그림자들이 황급히 휘날리는 돈을 주워 달아났다.
택시 운전사는 돈에 눈먼 목격자들을 뒤로하고 내빼버렸다. 비정의 도시 한 가운데서 32세의 한 여인이 그렇게 죽어갔다.
그 뺑소니 운전사를 잡으려고 해도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돈 훔쳐 달아난게 찔려서제보도 못하는지 아니면 도 다시 하이에나처럼 남의 죽음의 장소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어둠속을 헤메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 94.9.29일자 동아일보1면(횡설수설)-
*물질에 집착하는 현대인
헨리 뉴웬이란사람이 쓴 책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고]란 책이 있다. 거기에는 한 비유적인 이야기가 실려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왓다. 그런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발작을 하면서 기물을 파괴하고 혈기를 부렸다. 간호사 두 사람을 불러서 가까스로 진정을 시킨 후에 진료를 시작하려던 의사는 환자가 오른 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손을 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펼 수가 없어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손가락을 하나 둘 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새끼 손가락을 펴니까 딸그랑 하고 밑에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퍼렇게 녹이 슨 1센트자리 동전이었다.
그 환자는 자기 존재와 1센트자리 동전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동전을 잃어 버리면 자기 존재가 전부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와서 칼로 찌르고 이것을 빼앗아가지 않을까,이걸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하는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매일을 시달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동전을 움켜쥐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물질은 우리를 잘못된 것에 집착하게 하고 거기에 말려들게 하여 결국에는 파괴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면
곡마단 소녀.
산골짜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추수 후에 들르게 마련인 곡마단의 트럼펫 소리에 흥분했던 기억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가난했기에, 나이어린 아이들에게 곡마단 구경하라고 냉큼 돈을 건네주는 아버지 어머니는 드물었다. 그래서 산촌 아이들 돈 없이 구경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유객(誘客)하는 선전 행렬 때 울긋불긋한 오색 깃발을 들고 그 행렬에 끼이는 일이다. 그것도 잽싸고 넉살 좋은 몇 놈만이 경쟁에서 선택받을 수 있는 특혜였다.
이렇게 선전 행진이 끝나면 선택받았던 소년 기수들의 손바닥에 파란 도장을 찍어준다. 깃발 든 노역의 대가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표시를 그렇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두워지면서 입장이 시작되면, 이 선택받은 아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도장 찍힌 손을 쳐들고 보무당당하게 걸어 들어갔고 그것이 그토록 부러웠던 것이다.
소년들이 이러했다면 소녀들은 더욱더 술렁대게 마련이었다. 대체로 곡마단의 곡예 소녀들은 가난한 산촌을 돌 때 벼 한섬 주고 사들이는 것이 관례였다.
금수술, 은수술 달고 금박, 은박 얼룩진 옷을 입고 말타고 가는 곡예 소녀를 본 산촌 소녀들은 잠을 못 이루게 마련이다. 주야 가림 없이 일을 하고도 밑도 못 가리고, 보리죽, 밀기울로도 끼니를 못 메우는 산촌 소녀들에게 더없는 선망의 표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탈리아 명화 <라 스트라다(길)>에서도, 시골을 돌아다니는 곡마단의 곡예사 잠파노가 바닷가 가난한 오두막집에 사는 약간 머리가 모자란 소녀 제르소미나를 1만 리라에 사서 곡예를 가르친 것을 보면, 곡마단 인생의 시발은 동서가 다를 것이 없는가보다.
다만 화려한 스타 탄생을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곡예를 익히기까지 가혹하고 비정적인 학대가 수반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곡예인 사당패 이래로 곡예의 조건은 몸이 능굴능신(能屈能伸)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살이 쪄도 안 되고 뼈가 굵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밥 대신 콩을 삶아 먹이고, 뼈를 연하게 하는 초를 식전 식후에 한 홉씩 마셔야 한다. 그렇게 먹이고서 뼈가 굳지 못하게 반원형의 틀에 허리를 젖히고 잠을 재운다.
엄마 생각에 울지 못하게끔 익모초보다 쓰디쓴 망모초(忘母草)를 달여 먹이고, 성감대가 발육하면 날렵해지지 못한다 하여 유방 발육을 물리적으로 저해하는 젖졸임말로 가슴을 죈다. 줄을 타는데 발이 크면 안 된다 하여 가죽 틀버선을 신겨 걷지도 못하게 한다. 고달파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에는 족쇄를 채워 재우기까지 한다.
사양 흥업인 한 곡마단의 전단장이 어린 고아 소녀에게 곡예를 시키고자 혹독한 인간 학대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 학대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한국 곡예사 이면의 상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요즈음 아이들을 입시의 틀에 구겨 넣고자 가혹하게 공부시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육체를 틀에 박아 맞추느냐, 정신을 틀에 박아 맞추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인 것이다.
*물질의 풍요로 인한 병폐
꿀을 따지 않는 벌
오스트레일리아는 날씨가 온화하여 연중 꽃이 피어 있다. 한데 꽃에 따르게 마련인 꿀벌이 없다. 그 버려진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유럽에서 가장 양질의 꿀벌을 방사(放飼)했다. 벌들은 신이 나 꽃밭을 누비며 훌륭한 꿀을 따 모았다. 한데 그 벌들의 노동은 겨우 1년 이상 계속되질 않았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벌들은 벌집속에서 편안히 졸고만 있어 꽃을 찾아다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꽃이 연중 어느 한 시기에만 핀다면 꽃이 피지 않는 때를 위해 꿀을 모아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연중 꽃이 피어 있다면 힘들여 꿀을 모아둘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들은 게을러빠져 꿀을 따지 않게 된다. 먹고 입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이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야수를 사육하면 피둥피둥 살이 찌고 장수는 한다. 영양이 충분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야수들은 야성을 상실한다. 그것이 야수에게 있어 정말로 행복한 것인가고 우리 속의 사자나 호랑이에게 물어본다면 고개를 옆으로 흔들 것이 자명하다. 요즈음 아이들이 또 이와 비슷하다. 노력하지 않고도 생활이 보장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표를 상실하고 생활이 권태로와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서는 적당히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었다. 록팰러 가문이 대대로 부(富)를 계승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이 일곱 살만 되면 세차, 신문배달, 베이비 시터 등을 시켜 제 용돈과 학비를 제가 벌어 쓰도록 하는 법도를 지켜 내려왔기 때문임은 알려진 사실이다.
옛날 우리 나라 왕실이나 귀족, 상류사회에서 자제가 철들 무렵이면 살기 어려운 집을 골라 위탁 양육시키는 관습도 그런 것이다. 연산군도 어릴 때 남대문 밖 강희안(姜希顔)의 집에 위탁 양육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의존적 소년에서 자립적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 때 육체적 고통과 시련을 가하는 것도 같은 논리랄 것이다.
삼한(三韓)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 무렵의 소년들은 등가죽을 뚫고 거기에 굵은 새끼를 꿰어 구령을 부르며 통나무를 운반하도록 되어 있다 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청년의 집(멘즈 하우스)이라 하여 일정기간 동안 공동기숙을 하며 성년이 되기 위해 이렇게 고행을 시켰던 것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도 삼각산 백운대 정상에 올라가 벼랑바위(決斷岩)를 뛰어넘음으로써 담력을 과시, 성인식(成人式)을 치르고 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이 성년고행(成年苦行)은 방법은 다를망정 팔도에 널리 분포돼 있었다.
무거운 들돌을 들고 일정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한다든지, 주먹다듬이라 하여 족장(足掌)을 친다든지, 외줄 그네에 매달리게 하여 마냥 돌려댄다든지, 이 성인식에 합격해야만이 반품 받던 품삯을 온품으로 받게 된다든지, 장가갈 자격이 주어진다든지, 경어나 존칭을 받게 된다든지......하였다. 한데 요즈음의 성인식은 고행은커녕 선물을 보내고 다과로 잔치를 베풀어준다는데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에게 꿀을 갖다주는 격이다. 아예 없애버리는 편이 나은 성인식 풍조가 아닌가 싶다.
*나의 재물은 어디에
4세기 동방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여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취어져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은 없고 떠날 때도 가지고 갈 것은 없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취어져 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져넣으면 나는 예레미야처럼 될 것이고 굴에 던져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고,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처럼 될 것이고 목을 벤다면 침례 요한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나는 사도 바울처럼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시편 56편 4,11절)
*욕심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인간에겐 땅이 필요한가]를 통해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끝이 없는가를 믇는다.
될수 있으면 많은 땅을 갖기를 원하는 농부가 있었다. 하루종일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곳까지의 땅을 주겠다는 지주의 선심으로 농부는 죽어라하고 뛰어 갔다가 되돌아 오지만 너무 지쳐서 그만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농부는 자기가 갖고 싶은 만큼의 땅을 한번 밟아본 것인데 죽어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지막 장면은 농부를 따라간 머슴이 주인을 위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들어갈 수 있는 육척쯤의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곳에 주인을 묻는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무서운 해를 끼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금을 만드는 기계
희랍 신화 중에 [마이대스]라는 왕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이 왕은 어느 날 낯선 신(神)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신에게서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은 왕은 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다 금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왕이 황금을 만들던 그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합니다. 하루종일 그는 황금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는 황혼녘에 마이대스가 부르짖었던 그 절규를 잊지 마십시오.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이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그 황혼녘에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합니다.
이제 그의 소원대로, 그의 꿈대로, 그의 이상대로 모든 세계가 황금이 되었지만 그 황금의 한복판에서 그는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 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 낯선 왕 마이대스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어쩌면 오늘 당신과 저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제가 황금을 만드는 기계에 불과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삶에 대한 정직한 통찰이 없이 시간이 흘러가다가 어느덧 이 황금을 만드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내 자신의 초라함 앞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이 절망을 볼 수 있지 않은지요.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생명의 물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것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구하고 기르시기 위한 것이지, 다른 외부적이고 장식품과 같은 물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어떤 귀중한 보석류를 무척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막 너머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그 보석을 찾으려고 사막을 건널 때, 그는 그만 길을 잃고 뜨겁게 타는 사막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모래언덕으로 기어가고 있을 때, 그는 자기 앞에 반쯤 묻힌 물통을 보았습니다. 그는 강한 기대를 가지고 그 물통을 집어들고는 마개를 열고 물을 마시려고 물통을 자기 입에다 갖다 대었습니다.
맑은 물이 나오는 대신 청백색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물통에서 주루룩 쏟아졌습니다. 화가나서 그는 물통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불타는 사막 위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절망과 갈증 속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것만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 것인가?
사실은 우리는 생명의 물, 하늘의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먹이고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방법을 알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계시를 보여주고, 우리가 그 자기계시 없이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지식을 제공해 줍니다.
*노벨 평화상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벌지만 이것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철저하게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지막 도전은 얼마나 결정적입니까?
*아멘을 멈춘 부자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선생이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욕심 많은 한 부자가 앉아 있었다. 그때 웨슬레 선생은 설교 중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여러분은 할 수 있는대로 돈을 많이 벌으시요.라고 하자 그는아멘, 아멘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전부를 저축하라고 역설하였다.
그때 그 부자는 얼굴에 미소를 띄고 좋아라고 아멘을 연발하였다. 마지막으로 웨슬레 목사님이 할 수 있는 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자 그 부자의 입에서는 아멘 소리가 나오지 않고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축복이 안되는 돈
코리 텐 붐 여사가 시계 제조업자였던 그 부친 캐스퍼 씨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가족들은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 날로 그 액수에 해당되는 시계를 살 사람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손님이 현금을 들고 들어와서 비싼 고급 시계를 하나 샀습니다. 그는 그 시계를 산 후에, 일전에 캐스퍼 씨의 친구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시계업자에게서 시계를 한 개 샀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캐스퍼 씨는 그 시계를 좀 볼 수 없겠느냐고 청해서 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 시계는 작은 부분만 수리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수리를 해 주면서 그 손님에게 그 시계는 품질이 좋은 고급 시계이며 그 시계업자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좋게 말해 주었습니다. 손님은 놀라면서 새로 샀던 시계를 반납했고 캐스퍼 씨는 돈을 돌려 주었습니다.
코리는 그 손님이 점포를 나갈 때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렸다가
아빠, 왜 시계를 도로 물려 주셨어요. 은행에 입금해야 될 돈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으세요.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축복이 되는 돈이 있고 축복이 되지 않는 돈이 있는 거란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다른 손님이 그 점포에 와서 그 당시에 생산했던 시계 중에서 가장 비싼 시계를 사감으로써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다 갚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코리를 스위스에 보내 2년 동안이나 시계 제조 기술을 익힐 여유까지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깍아내리는 것으로 영광을 받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잠롱 스리무엉
태국 왕립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던 사람이 예편을 했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누구못지 않게 돈과 명예르 추구한 사람이다.
어느 날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다행ㅎ 인명의 손상도 없었고 경제적인 손실도 없었으나 그날 이후 그는 밤잠을 못자는 병에 걸렸다. 혹시 떠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할까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불면증의 고통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라야 그 괼움의 정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지 않은가?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불면증이다. 이렇게 지옥같은 날이 얼마간 계속되는 동안 그는 새로운 교훈 하나를 깨달았다.
ㅂ;록 많은 재물과 이에 걸맞는 존경심이 따른다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지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통이 더욱 증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그리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열심히 일하여 남은 것을 사회에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면서 그는 그때까지 무거운 짐을 진 듯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지극히 저연스러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백리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태국의 방콕시장 잠롱 스리무엉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남에게 많이 주면 줄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돈을 주면 돈을 얻게되고 금을 주면 금을 얻게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 언젠가 170불짜리 자가용을 기증하자 250만불짜리 롤즈로이즈를 얻게된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줄 때 무엇을 바라고 주어서는 안됩니다.”
올해(95년) 61세가 되는 그는 방콕의 시장으로서, 팔라드하르마 정당의 당수로서 태국은 믈론이고 세계인의 양심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코 부와 명예와 칭송을 탐한바 없으며 그런 것들은 자연히 따랐을 뿐이지요.저는 이런 행운을 사회에 환원할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직위는 보다 많은 분들에게 헌신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 돈
'돈'의 어원
─ 朝鮮日報에서 ─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돈'이란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돈'은 화폐, 통화, 경화란 말 이외에도 옛날에는 '전' 또는 '금'으로 도 불려졌다. 고려때나 조선조에는 패(貝), 구(龜), 천포(泉布), 도(刀), 백(帛), 맥(陌), 공방(孔方)등으로 호칭됐다. 화폐라는 말은 고려때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통화, 경화와 같이 개항이후 일반화된 말들 이고 그 외의 錢, 貝, 刀등은 중국에서 유래돼 사용되기 시작했다.
'錢'은 중국 周나라때 사용되기 시작한 화폐의 종합적인 명칭으로 우리 나라에는 B.C. 957년경 기자조선 흥평왕때 사용되었던 子母錢을 '전'으 로 부르기 시작하여 고려숙종때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의 대각국사 義天은 '전'은 錢, 布, 泉, 刀의 4가지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설명했다. 錢(엽전류)의 바탕이 둥근 것은 하늘을 의미하 고 모가 난 것은 땅을 의미하며, 泉은 통행하고 흘러가는 것이 마치 샘 물과 같다는 뜻이고, 布는 백성들사이에 상하 널리 퍼져 막히지 않는 다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刀는 날카롭게 유익하게 사용하여 빈부를 나 눌 수 있으며 날마다 써도 무디어 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돈'이란 단어의 뜻과 어원,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에 대해서는 정 설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두가지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 하나는 '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또 하나는 화폐의 순환성에 근거 를 둔 순환사상에 의한 설이다.
전자는 '돈'의 어원은 도화의 '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로서 고려말까지 '錢'과 '刀'는 화폐를 의미하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고, 音도 '도'와 '돈'으로 혼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한글이 창제되고 '훈몽자회'같은 한자교과서가 보급되면서 '돈'으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또 고려시대에 '刀'가 무게의 단위로 사용되면서 돈쭝=錢으로 병용되어 '도'는 '돈쭝'의 원형으로, '도'가 '돈'으로 와전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다.
후자의 경우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폐의 순환사상에 근거를 둔 '돈은 돌고 돈다'는 말의 '돈'에서 그 어원을 찾으려는 주장이다. 화폐 의 순환사상을 내포한 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 는 '돈은 날개가 없어도 날고, 발이 없어도 달린다(無翼而飛無足而走)'라 하였고, 일본에서는 '돈은 천하의 돌고 도는 것'으로 여겼다.
지금까지 설명한 '돈'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들은 완벽한 것으로는 볼 수 없는 것으로서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 1993年 9月 20日, 조병수 한국은행발권부부부장. -
*인생의 소망은 어디에
데이빗 리빙스턴은 세기의 위대한 기독교인이요 선교사였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아 그의시신이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시키게 되었다. 그때에수만은 군중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어떤노인이 외로이 혼자서 군중들 후미에 홀로 서서 가슴을 조이며 슬피울고있었다.
이 노인은 다름아닌 리빙스턴의 친구 윌리암이었다. 그는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 장본인이었다.
윌리암은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 후 런던에서 큰 부자가 되었으며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런데 윌리암은 리빙스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렇게 고백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받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성을 떨치며 이 세상을 사라지는구나"며 "그러나 나는 비록 부자라고 말할 수 있으나 소망없는 세상을 위해서만 살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가"라고 한탄한 것이다.
비록 리빙스턴은 가난하고 고생하며 선교지에서 보잘 것 없는 인생처럼살았지만 하나님과 세상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윌리암은 부자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지만 그는 소망없는 인생의 누린것이다.
우리 인생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 너 자신을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로 만들라 누구에게든 인생을 고되게만들지 말라" (에머슨)
*빗나간 욕망의 위험
의사 부인인 보봐리는 시골 생활을 지겹게 여기면서 늘 한탄한다. 파리의그 화려한 무도회에서의 사교적인 환상을 생각하곤 한다.
그녀는 무도회에서 만난 도돌프란 지주와 깊은 방탕에 빠져 든다. 그들은둘이서 도망하기로 약속하지만 로돌프가 배신해 버린다. 보봐르는충격에 못이겨 자살을 시도하다 간신히 구출되어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파리서 돌아온 레온이라는 청년과 그녀는 또 놀아난다. 의복비 화장비,사교비로 빚이 누적되어 간다. 레온의 어머니는 둘 사이를 갈라 놓는다.
보봐리는 빚더미 위에 앉아 파산위기에 직면한다. 그녀는 지주 로돌프를찾아가서 애원을 한다. "빚을 갚아 줄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그러나 로돌프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돈은 내게 없오"라고 거절해 버린다. 보봐리는 음독자살을 한다. 온 가족이 소동하는 가운데서 그녀는 죽음의 길로 가고 만다.
보봐리는 자신의 미모에 늘 찬탄하면서 자기도취에 살았다. 그래서 남편도 딸도 다 버리고 향락을 추구했다. 주어진 가정과 분수 안에서 행복을찾지 않고 헛된 것에서 만족을 구했던 빗나간 욕망은 결국엔 불안과 허무와죽음분이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하였도다"(약5:5).
*황금을 만드는 손
희랍 신화 중에 [마이대스]라는 왕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이 왕은 어느 날 낯선 신(神)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신에게서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은 왕은 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다 금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왕이 황금을 만들던 그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합니다. 하루종일 그는 황금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는 황혼녘에 마이대스가 부르짖었던 그 절규를 잊지 마십시오.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이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그 황혼녘에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합니다.
이제 그의 소원대로, 그의 꿈대로, 그의 이상대로 모든 세계가 황금이 되었지만 그 황금의 한복판에서 그는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 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