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옵소서
성 게르트루드가 주의 기도를 드릴 때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옵소
서"라는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하곤 했다.
어느날 그녀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른손
에는 건강을 쥐고 왼손에는 병을 들고서 나타났다.
주님께서 [내 딸아, 네가 원하는 것을 택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그녀는, "오 주여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옵소서"라고
대답하였다.
*리챠드벡스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을 주제로한 설교로 많은 사람을 감동 시
켰던 리차드 박스터는 일생동안 병과 쇠약에 시달렸는
데 아마 이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은 습관적인 고통의 훈련이었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몇년 동안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게 했으며 또한 그것은 그의 [성인의 안식]과
[더 좋은 나라]에 관한 현실적인 환상에 대해 더 많은 열정과 열심을
품게 해 주었다.
그의 기도( 그것은 현실적인 복종의 형식이다)는 희한하고 아름다운
데 그는 그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런 손길과 지혜를 깨닫는다.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이 가시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당신이 하시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
*신호등을 따라서
기관사의 나태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고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열
차 충돌 사고가 뉴욕 교외에서 발행했었다. 역 구내에 서 있는 다른
화물차를 들이받는 순간에 기관사는 온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생
명을 잃고 말았다. 사고 조사 결과 이 지역의 신호등은 모두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 또 사고지점에 이르기 전 3/4마일 정도의 거리에서
부터 속도를 줄이라고 경고하는 신호등들도 약 반 마일 전부터 작동되
고 있었다는 사실도 수사관들은 밝혀 냈다.기관사는 방심하다가
신호 등을 무시하고 달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크리스챤으로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자주 말씀의
신호등을 보여 주고 계신다. 서라 경게하라 가라 등 이러한 말씀의
신호 등에 따라 순종하면 축복스런 생애가 될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신호등을 무시해버린다면 불행이 닥쳐 올 수 있다.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조정키를 곧 바로 잡고 있도록 하라.
주님의 "신호등"을 따라 정진하라. 그러면 여러분 자신 뿐만이 아니
라, 많은 사람들이 닥칠 위험에서 보호될 것이다. 여러분의 무지나
나태가 많은 사람들의 비극을 초래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첫 번째 자리
스펄젼은 어느 날 밤, 그가 수많은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엑세터 홀로
그의 약혼녀를 데리고 갔읍니다. 택시가 그 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마음은
온통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읍니다. 그느 수잔 탐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이야기해 놓고 예전처럼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읍니다. 그 일이 끈난 후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녀는 몹시 토라져
있었으며 다시는 만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스펄젼이 계속
만나달라고 간청함으로 그녀는 마지 못해 아래층으로 내려왔읍니다. 그는
먼저 사과한 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오. 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되길
첫째로 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첫째이며, 주님을 위한 일에 준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나의 두번째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는 매우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오. 나의 첫째 임무는 주님의 일입니다."
나중에 스펄젼의 부인은 그 날 밤 남편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분의 임재
를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읍니다. 그녀는 지금 두번째 자리르 가지고 있
읍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선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이동 명령이 내려졌을 때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법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나의 삶을 위한 하나님
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또는 "이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
이 내게 원하시는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지난 해 세상을 떠
난 그리스도인 마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이 없는 어느 날 밤
아일랜드 해협을 건너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갑판에 서서 옆에 있
는 선장에서 '오늘 같이 어두운 밤에는 홀리헤드 항구를 어떻게 찾아
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장은 '저기 등대가 셋이 보이지요? 세
등대가 일렬로 나란히 서서 하나인 것처럼 보일 때 항구의 입구를 정
확하게 찾아낼 수 있는 위치에 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설명을 들은 마이어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는 언제나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세째는
환경의 추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그리고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기까지
는 절대 일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요한1서에서 나타난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계속 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이어의 말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서 우리가 새겨 두
어야 할 좋은 권고입니다.
*불행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어떤 신앙인 부부가 자식을 모두 잃는 불행을 당했다. 순식간에 자
식들을 잃은 그 부부는 절망과 슬픔에 잠겨 괴로워했다. 사람들이 그
들 부부를 찾아와 "좀 더 주의했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애석해하며 그들 부부의 잘못을 탓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하고 난 후 부인은 이렇게 말했
다.
"그 때 만일 그 불행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결단코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부부는 불행한 사고를 이렇듯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 뜻에 순복하
여 받아들이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였다.
* 어짜피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면
운전자가 도로상을 진행할 때 우측으로 통행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측으로 통행하는 운전자는 편안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오히려 그는 앞으로 빨리 나아가는 편안함을 즐기며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우측길을 이탈하여 한번 좌측길로 들어서 보라. 설령 앞에서 차가 오고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운전자는 그 때부터 불안과 초조함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차가 보이지 않아도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쭈욱 뻗은 길일 때는 그래도 조금은 낫다. 그러나 조금 이라도 구부러진 길이거나 가파른 언덕길을 만났을 때는 상황은 달라진다.
맥박이 빠라지고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등에는 땀이 흐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좌측길로 가겠다고 우긴다면 그 운전자는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일 것이다. 괜한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꽉 막힌 담장안에 갇힌 새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정해진 법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좌측길을 달리며 언제 앞에서 달려올지 모를 자동차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달릴 것이 아니라 우측으로 헨들을 꺾기만 하면 된다.
좌측길을 달리다가 우측으로 들어서 보라. 말할 수 없는 평안이 그때부터 마음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좌우측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염페 사람과 정답게 담소도 나누며 갈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길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한 것을 놓고 왜 그리도 심사숙고해야만 선택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법 안으로 들어가 보라. 그곳엔 평안함이 있고, 기쁨이 있고, 풍족함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 주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명심하자.
요15:10-11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자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이가?
- 95.2.17.새벽에-
*순종(믿음)-성령의 일곱번째 열매
1.모든 의를 이루도록 허락하라.................마3:15
2.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자는 알게된다.....요7:17
3.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다..........요7:18
4.아버지가 함께 하는 자들.....................요8:29
5.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요8:50
6.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막14:36
7.주님은 아버지의 뜻인 그 잔을 받아들였다.....요18:11
*순종의 낱말뜻
1. 히브리어
쇠마 - 듣다. 청종하다. 유의하다. 관심을 가지다. 듣는 것을 이해하다. 복종하다.
2. 헬라어
휘파코오 - 주의깊게 듣다. 유의하다, 따르다.
휘포타소 - 명령에 경청하다, 순종하다, 예속시키다. 통치되도록 하다. 순종, 승락, 추종, 예속 시키다.
*순종에 대한 성구
1. 순종의 대상(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
신30:20 - 여호와 하나님께 느9:34 - 주의 명령과 말씀에
엡6:1 - 부모에게 엡6:5 - 상전에게
히11:8 - 부르는 자에게 히13:17 - 인도하는 자에게
벧전1:22 - 진리의 순종
2.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신30;2 -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렘35:8 - 온 가족이 평생을
대상29:23 - 온 백성이 고후7:15 - 두려워하고 떪으로
롬1:5 - 믿음으로 롬6:17 - 마음으로
고후2:9 - 범사에 골3:20 - 모든 일에
3.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
신1:36 - 약속의 땅을 얻게 됨 신28:2 - 여러가지 복을 받게 됨
렘26:13 - 재앙을 면하게 됨 행5:32 - 성령을 받게 됨
롬6:16 - 의의 종이 됨 히5:8,9 - 온전하게 됨
벧전1:14,15 - 거룩하여 짐
*권세에 순종하라 (롬13:1-7)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상황으로 나타나신다. 하나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하여 나타나시고, 하나는 하나님의 행위 즉 활동에 의해 나타나신다. 하나님의 권위는 하나님 자신이고, 그의 활동은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행함의 문제와 직결된 범죄에서 보다 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항이 더 근원적인 죄악이다.
1. 거역은 사탄의 근본 원리이다.
사탄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던 천사장이었다(사14:12-15).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던 상태에서 순종의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 사탄은 지금도 불순종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엡2:2). 거역의 근본 위에 서서 교리적으로 크리스찬이 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헌신과 봉사는 사탄을 유익하게 할 뿐이다.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에게 최대의 요구사항이다.
진정한 신앙이란,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아니요 전도하는 것도 아니요 헌금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전멸시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살진 양과 소를 남겨 놓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무엘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제사보다 순종이 더 근원적이기 때문이다. 제사의 제물 속에도 거역의 원리가 포함되는 한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제사는 하나님의 행위에 속하고 순종은 하나님 권위에 속한다.
3. 우리의 봉사가 순종위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순종은 내가 십자가를 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의 봉사 속에 거역의 원리가 숨어 있다면 우리의 봉사를 통하여 재미보는 것은 사탄 뿐이다.
마7:22에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도 행하였으나 주님은 불법이라고 하셨다. 그 행위가 자기 본위에 있고 순종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인은 모든 권세에 순종해야 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의 권위가 누구인지 즉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좋은 각종 선물은 순종을 통해서 나타난다.
*청종하지 않으면
약 4,000년전의 일이다.
에게해 연안 언덕에 견고한 성을 쌓고 경제적인 번영을 구가하던 트로이라는 한 도시 국가가 있었다. 이 성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요 세계 제일의 미녀로 소문난 헬레네라는 여인을 납치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이 원인이 되어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걱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기라성같은 영웅들과 수많은 군병으로 구성된 그리스 연합군이었다. 그들은 간단히 트로이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성은 무려 9년의 세월이 흘러도 끄떡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는 차츰 불평불만이 고조되어 갔고 아울러 군사들의 사기또한 형편없이 저하되어 가고 있었다.자칫 잘못하면 자중지난으로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의 창안으로 거대한 목마 하나를 헬레스폰트 해변에 남겨두고 전워 다 사라져 버렸다. 적 없는 해변에 우뚝 선 한필의 목마, 트로이 사람들이 관심은 오로지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 그리스 도망병 하나가 붙들려 왔다. 사실은 그리스의 스파이로써 도망병으로 위장한 그가 말한다.
만약 해변에 서 있는 저 목마가 이 성으로 들어오면 트로이성은 신의 가호를 받아 영원히 함락되지 않고 행복과 먼영을 끝없이 누리게 될 것이라고,
이 말에 유혹을 받은 사람들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 들일려고 할 때였다.
예언가 라오콘이 흉폭한 그리스 사람들이 우리에 유리한 물건을 남겨두고 갈 이유가 없으니 저 목마를 바다에 쳐 넣든지 아니면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잔쟁에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잔뜩 자만에 빠진 트로이 사람들은 목이 터지게 부르짖는 그의 말을 외면하고 스파이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목마를 성안으로 옮겼다.
그때문에 9년동안이나 공격을 받고도 건재헸던 성문은 그들의 손에의해 허물어졌고 성안은 축제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때였다.
성안에 들어온 목마의 뱃속에서 오디세우스,메넬라오스등 희대의 영웅과 함께 100명의 용사가 튀어나왔고 아울러 미리 약속된 군호에 의해 바다에 대기하고 있다가 되돌아온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를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고 말았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인생들에게 임하는 최대의 원인은 참된 말, 옳은 말, 진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였으므로“](렘40:3)
망해가고 있다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치고 또 외쳤다.
*진정한 순종은 주인을 이롭게 하는 것
중국 전국시대의 사람이다.
제나라 맹상군은 후세사람들로부터 멋진 인생을 산 사람으로 널리 공인받고 있다.
이조시대의 고가사로 맹상군가라는 것이 있다. 거기 [천추전 존귀키야 맹상군만 하랴마는...]이라는 구절이 등장할만큼 만복을 두루 갖춘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맹상군도 자기가 거느린 3,000명의 식객을 치다꺼리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당면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민하던 그는 이 문제의 타개책으로 자기의 식량이 나오는 설(薛)지방 사람들로 부터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돈을 받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그리고 이 일을 풍환이라는 종에게 맡겼다.
맹상군의 명을 받고 출발하기에 앞서 풍환은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올 때 사가지고 올만한 것이 없는가를 맹상군에게 물었다. 이때 맹상군은 집안에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풍환이 주임에게 빚진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이에 풍환은 맹상군의 이름으로 그들의 빚을 모조리 탕감해 주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온 풍환을 보고 화가난 맹상군이 불쾌한 표정으로 힐책을 하는데 풍환은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사람들에게 돈을 받으면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올까 궁리해 보니 이 집에 없는 것이라곤 오직 의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를 구하다 보니 결국 불쌍한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저는 만금을 주고 정의를 사가지고 왔으니 주인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잘한일이 업사고 믿습니다.]라고 넉살좋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후 맹상군은제나라왕의 미움을 사서 정승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이렇게 되자 3천명의 식객들은 자신들의 보신을 위하여 뿔뿔히 흩어졌고 그는 결국 자기 몸뚱아리 하나 안심하고 맡길만한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 풍환은 주인을 설지방으로 인도했다. 맹상군은 거기서 의외의 환대를 받았고 아울러 설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다시 멋지게 기사회생함으로써 그의 진면목을 온 천하에 과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억지로 의를 사서 누렸던 맹상군의 복보다 더 엄청난 복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 누릴 수 있음을 말슴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라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23)
우리가 아무리 주의 일을 한다해도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고 말것이다.
진리로 분별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 내 의지로 내 지혜로 내 판단으로 주를 섬겨서는 안된다.
내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아니하면 행하지 않는 것이 순종이다.
*단순한 순종 (선교사)
아프리카로 간 영국의 선교사 스터드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의 부자 청년은 실패했었던 바로 그 일을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이 황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전재산을 그리스도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및 해외에서의 주님의 일을 위해 수많은 돈을 드렸으며. 한편 그의 약혼녀를 위하여 9,600불 상당의 돈을 저축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 있어서 장래의 남편될 사람의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찰리. 주님께서 젊은 부자 청년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신지 아세요.
하고 그녀가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팔라고 하셨지
하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빈 손으로 출발해야 하겠군요.
그리하여 그 돈도 선교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를 따르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
인도에 가서 일한 선교사 가운데 유명한 와일더 박사라는 선교사가 계셨습니다. 한번은 인도에 미군 해병부대가 도착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들과 해군 장교 한 팀이 같이 식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더러는 믿지 않는 군인도 있었습니다. 어떤 장교 한 분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니, 선교사들이 여기까지 와서 일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선교는 미국에서나 하면 되지. 이 인도인에게 기독교가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와일더 선교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장교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장교님. 당신의 사령관이 오늘 밤 당신에게 당신의 배를 가지고 당신의 소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향해서 떠나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겠소.
이 장교는 대답하기를 명령이라면 가야죠라고 했습니다.
장교님. 내 인생의 사령관이신 예수께서 명하시기를 가야 한다고 명하셨소. 나는 그래서 그 명령을 따라 이 자리에 와 있소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저에게 이 복음을 가지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명하신다면 오늘 이 명령 앞에서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 앞에 당신이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이정표
어느 청년이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 저는 십계명을 싫어합니다. 십계명에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하면서 십계명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대답할까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앞에서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동쪽은..이고, 서쪽은..이다라는 이정표를 보고 목사님은 자기들이 가야 할 목적지와는 반대로 차를 꺾었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목사님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사님은
이 사람아. 내 마음대로 가면 되지 뭘 그래
하며 암시적인 대답을 주었습니다. 자 빨간 신호, 파란 신호가 귀찮게 느껴집니까? 누구를 위한 신호입니까? 법이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 때문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완성하셨습니다. 법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사랑은 모든 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로 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어느 유대 랍비와 신교인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신교인이 말하기를
당신들은 왜 맛있는 새우나 기름진 돼지고기 등을 먹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시니 안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안 먹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을 알 때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율법과 순종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율법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성령의 임재는 둘 다 우리가 율법을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하나님은 그의 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셨는가?그는 로마서 8:3-4에서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왜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마음속에 두셨는가? 바로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법을 기록하시기 위함이다고 고후3:3,6에서 말씀한다.
따라서 구약에 나온 새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31:33)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36:27)라고 말슴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순종하도록 부르신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입증하는 방법은 베드로처럼 큰 소리로 충성을 단언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감상적인 찬양들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을 검증해 주는 것은 순종이며 사랑의 보답은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라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다.
- 죤 스토트 -
*자발적인 순종을 위해
그리스도의 영이 내 마음에 들어오신 것은 율법을 내 마음에 기록하시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타성에 의한 순종보다는 양심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을 행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
국가를 신성화하는 것은 로마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까지도 자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도저히 바칠 수 없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전체주의 정권들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국가를 존중해야하고 제한된 범위내에서 국가에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를 숭배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탐하는 무 비판적 지지를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제자도는 때론 불순종을 요구한다. 실로국가에 대한 불순종은 성경적 교리이다. 성경에는 그에대한 너덧 가지의 주목할 만한 예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1:15-17,단3장과 6장,행4:19,5:29)
그것은 예수님은 주인이시라는 자연스런 주장으로 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원리는 분명하다. 비록 그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양심의 고뇌를 겪어야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는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 국가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관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기 때문이다.(롬13:1-7)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그 시점까지는 옳다.그러나 그 시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만일 국가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를 잘못 사용하고 감히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명한다든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하든가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예”라고 하기 위해 국가에 “아니”: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말하듯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5:29)
인간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게 불순종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순종의 사람 이삭
이삭은 4대 족장들 중에서 제일 장수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향수하였고(창25:7), 야곱은 147세를 향수했으며(창47:28), 요셉은 110세를 살았으나(창50:26) 이삭은 180세를 살았다(창35:28). 또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의 생애는 험난하고 굴곡이 많았으므로 그들에 대한 기록이 지면을 많이 차지했지만 이삭은 청소년 시절에 번제물로 자기 자신을 바칠 때,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시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반항하지 않고 순종했다.
또한 40세에 결혼 할 때도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아버지의 뜻을 따랐으며, 또 그의 아내 리브가가 20여년간 자식을 낳지 못했을 때에도 잘 참고 기다렸으며, 자식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결혼 후 20년만에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고도 그가 남긴 신앙의 아름다움이 많다. 그가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해서 백배나 더 결실을 얻었고,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파는 아름다운 신앙 전통을 확립했다.
*순종의 교훈
믿음과 순종! 그 유명한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떤 날, 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이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들 후보에게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는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자질이 있는가? 어떤 명령을 주어도 그 명령을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이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프랜시스는 보기 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교훈은 순종의 교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성경의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O.K.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 자기 프라이드를 꺾고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이 겸손함이 얼마나 요청되는 것인지..
*순종
세계에 흩어진 여러가지 선교 기관 가운데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기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어학에 특별한 재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미나 아프리카나 조그마한 나라 부족들이 모여사는 곳에, 쓰는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그 곳에서 그들은 언어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그 언어를 가지고 성경을 번역합니다.
한 사람이 마태복음을 번역하고 죽으면 누군가가 뒤를 이어 다시 그 곳에 좇아가서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또 죽으면 다음 사람이 가서 사도행전을 번역합니다.
이 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 하나가 남미의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성경 번역을 하다 보니까 그 마을 언어 가운데 순종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일을 꼭 하라고 하면서 꼭 해야 된다이런 뜻으로 말을 하는 가운데 계속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일을 꼭 해야 된다. 네 모든 마음으로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심부름 가는 아들 뒤에서 아버지가 말합니다.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그래서순종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를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길게 번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당신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좇습니까? 나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순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드물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를 따른다는 것,그가 가는 긹을 나도 간다는 것, 나의 삶을 위한 그의 계획과 뜻을 받아 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이것은 과거의 이기적인 죄의 삶에 대하여는 “아니오”라고 하며 예수님에게는 “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적 신앙은 외적 순종을 동반해야 한다.
믿기 어렵다는 것은 순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순종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은 없으며 제자도도 없다.우리가 순종을 향한 이 무조건적인 부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아니하고 “예, 그렇지만..”이라고 하며 망살인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빛이 이 어두운 세상의 현실을 비추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 소속된 우리들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순저과 충성으로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묶는 진정한 제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짐 왈리스는
“현대 전도의 큰 비극은 믿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순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적인 순종에로 부르셨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먼저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 “제자도” 데이빗 왓슨 -
*변화될 때까지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저분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잊었나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단순한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