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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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탈 줄 아세요?



문인숙



막내 동생 현지가 시집가던 날, 신랑이 신부 얼굴을 바라보며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니, 정말로 너무 예쁘다! 딱 천사 같다…”

현지보다 두 살이 어린 신랑은 앞으로 목사님 되실 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방금 결혼식을 올릴 신랑답지 않게 참으로 침착하고 평화로운 표정이었습니다.




내 동생 현지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현지를 등에 업고 엄마와 손을 꼭 부여잡고 침 잘 놓는다는 한의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때 저도 걸핏하면 꿈에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울부짖곤 했습니다. “엄마… 엄마…”하며 울다가 일어나면 엄마는 냉기 흐르는 방 윗목에서 구부려 기도하던 그대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치료가 소용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이 세상이 끝나는 곳에 가서라도 용한 의원을 찾아내면 우리 현지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고 굳게 믿으시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천지를 헤매 다니시던 엄마는 현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혀 다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한의원 출입을 일체 끊으시고 무섭게 공부를 가르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한 쪽 손으로 무릎을 짚어야만 걸을 수 있었던 현지는 비가 오면 책가방을 든 손으로 우산을 들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그 때는 등에 짊어지는 가방이 없었던 오래 전 옛날입니다. 비가 오면 언니 오빠나 친구가 가방을 들어주고 우산을 같이 받기를 기다리는 대신 현지는 비옷을 떨쳐입고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서 학교로 갔습니다. 얼마나 귀엽고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었는지….




어느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던 해, 논도 밭도 모두 물에 잠기고 다리위에까지 물이 찼던 어느 날, 그 무릎까지 물이 찬 길을 헤치고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 레슨을 간 현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어두컴컴한 다리 저 건너편에서 물을 가르며 달려오는 자전거 소리를 멀찍이 듣고 제 아래 동생과 둘이서 손나팔을 불며 “현지가? 현지 맞나? 현지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 소리에 힘차게 화답하던 우리 현지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언니야! 무서븐데 머할라꼬 나왔노!!!!!”

물을 가르며 달려오는 현지에게로 마주 달려가며 울 엄마가 현지에게, 그리고 우리 사남매에게 물려주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 보물 같기도 하고 단단하고 튼실한 방패 같기도 한 도저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그 밤 비 내리는 다리 위에서 희미하게 깨달았습니다.




현지에게 자전거란 단순히 비 오시는 날 우산 대신 선택한 수단이 아니라 참으로 힘에 겹도록 지고 가야 할 이 세상에서의 멍에를 능히 뛰어넘고도 남을 힘을 부여해준 어떤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비록 성한 육신을 하고 노루처럼 뛰노는 자 일지라도, 그의 나그네 인생길에는 부슬부슬 쓸쓸히 내리는 비를 맞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떨어야 할 때도 올 것입니다. 그러한, 어쩔 수 없이 홀로 지고 가야 할 멍에가 어깨를 내리칠 때, 그런 그에게 만약 <자 * 전 * 거>를 가르쳐 주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에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는 사람’ 있음을 알려준다면 그는 참으로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한 평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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