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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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오전 열 한 시경, 지하철 안은 한가했다. 구파발 역에서 차 문이 열리자, 큰 종이 박스에 공업용 테이프로 손잡이를 만든 짐을 들고 사십대 초반의 남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여느 장사꾼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지하철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손잡이가 있는 한 귀퉁이에 비껴 섰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그가 팔려는 것은 칫솔을 포함한 한 아름의 일용잡화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장사가 처음인 듯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서로 수군거렸다.

그때 한 건장한 노인이 그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보시오. 사정이 있어 마음먹고 나온 모양인데, 한 가운데 서서 큰 목소리로 설명을 해야 할 것이 아니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오.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일하시오. 하나에 얼마요?”

“천원입니다.” 그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노인이 물건을 사자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아줌마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그 물건을 샀다.

한 손에 천 원짜리를 쥐고 익숙하게 거스름돈을 주는 여느 장사꾼과는 달리, 노인에게 거스름돈을 주는 모습에서 나는 그가 막 실직한 가장임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어제까지 자신의 생활을 보여 주는 듯한 고급 지갑에서 서툴게 거스름돈을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불광역에서 내리는 노인의 등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

- 원재훈,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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