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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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 김밥이 빽이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싫었다. 솔직히 창피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우리 집안은 급격하게 몰락했다. 형은 돈벌러 간다고 나가 일년이 넘도록 소식도 없고, 어머니와 나는 매일 빚쟁이에게 시달리면서 지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당연히 성격이 삐뚤어진 나는 동네 건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내가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 사이,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어 광주리에 넣고는 당구장과 만화방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어머니는 내가 다니는 당구장이나 만화방 주변을 맴돌았기 때문에 자주 마주쳤다.

그날도 역시 수업을 땡땡이 치고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다. 당구가 잘 안 되어 짜증이 나 있는데, 어머니가 불쑥 들어오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피해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할 광경을 본 것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어린 놈들에게 김밥을 팔려고 접근하셨다. 하지만 놈들은,

“안 산다는 데 왜 그래? 정말 찐드기같은 아줌마네.”

“야, 자꾸 귀찮게 구는 데 보내 버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이로 뛰어들어 한방에 그 두 놈을 날려 버렸다. 어느새 친구들도 합세해 그 두 놈을 완전히 쓰러뜨렸다. 결국 그 사건으로 내가 친구들에게 숨기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나는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두 놈은 전치 2주의 진단서까지 끊어와 나를 구속시키라고 펄펄 뛰었다. 결국 그 길로 나는 경찰서에 끌려갔다. 경찰서에서 어머니의 행동은 나를 더욱 속상하게 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딱딱거리는 담당 형사에게 신을 모시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굽혀 인사하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만 좀 해, 엄마. 내가 들어가서 살다 나오면 되잖아.”

“너는 가만히 좀 있어. 이놈아, 네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떠들어!”

어머니는 나에게 한마디 하시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형사들에게 빌었다. 담당 형사도 전후 사정을 알게 되자 처리하기 찜찜한 눈치였다. 계속되는 어머니의 사과에 서서히 놈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씩씩대며 치료비를 요구하고 나를 감방에 넣겠다고 기세 등등하던 놈들도 담당 형사에게 “됐어요.” 하고는 슬그머니 나가버렸고 담당 형사는 나를 불렀다.

“임마, 너 또다시 그럴 거야? 아무리 분해도 그렇지.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할 거 아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는 거야.”

지장을 찍자 담당 형사는 나를 내보냈다. 속상해서 먼저 경찰서 밖에 나와 있는데, 어머니는 나오지 않으셨다. 먼저 가버릴까 하다가 궁금해서 경찰서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감사하다고 담당 형사는 물론 다른 형사들의 손을 일일이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셨다. 아마 그날 어머니께서 형사들에게 한 절의 횟수를 따지면 천 번도 넘을 것 같았다.

그것도 모자랐던지 경찰서를 나오기 전에 어머니는 김밥을 광주리에서 꺼내 책상에 내려놓으셨다. 괜찮다고 거절하던 형사들도 계속되는 어머니의 공세에 고맙게 받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 때문에 쪽팔려서 나 콱 죽어 버릴 거야!”

집으로 돌아온 내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라나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으셨다. 그후에도 어머니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아무 데도 나가지 못했고 어머니를 도와드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 먼발치에서 어머니를 보기만 했지 다가서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경찰서에 김밥을 계속 갖다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른 김밥과는 달리 아주 특별한 정성으로 만드신다는 것도. 나는 무척 화가 났다.

“그때 그만큼 빌고 줬으면 됐지 왜 계속 그래요? 경찰 그 자식들 혹시 엄마한테 무슨 협박한 거 아니야? 진짜 그랬으면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이 잠잠하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비도 없이 형편없는 환경에서 네가 이 꼴로 사는데, 내 속인들 편하겠니. 젊은 놈이 사고 칠 수 있지. 그런데 이런 일이 어찌 한 번뿐이겠냐.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겠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있어도 너를 꺼내 줄 빽도, 돈도 없다. 그러니 평소에 이렇게 김밥이라도 정성껏 싸서 갖다 주면 혹시 그런 일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단다. 그날 경찰서에서 내놓은 김밥이 참 맛있다고 형사들이 말했을 때 말이다.

내게는 이 김밥이 빽이다. 널 지켜 줄 수 있는 나한테는 젤 소중한 빽이란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정성 들여 만들지 않을 수 있겠니….”

● 이일경ㅣ경기도 일산시 마두동

새롭게 시작한 한주도 하나님과 함께^^.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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