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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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저녁에는 누룽지도 끓이지."

남편의 말을 들으며, 눌려놓은 밥에 물을 부으려는데 문득 십 년도 넘게 지난 옛일이 떠올랐습니다.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삼 학년 때 자취를 했습니다. 학교 주위는 방값이 너무 비싸 학교에서 이십오 분쯤 떨어진 것에 방을 얻었고,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을 두 개 사 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그게 번거로워 저녁엔 싼 라면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집엘 왔다 가면 너무 늦어 가끔은 굶고 가끔은 학교 앞 분식점에서 사 먹곤 했습니다.

학교 앞 분식점 이름은 '밥할매집'이었는데, 항상 가게 안에는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배가 안 파면 길컷 퍼다 먹거래이.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타누." 하셨습니다.
저는 늘 라면을 반 봉지 시켜놓고, 사람들이 많으면 누룽지를 한 그릇만 먹고 없으면 두 그릇도 거뜬히 비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계산을 제대로 못하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삼백 원짜리 라면을 먹고 천 원을 내면 칠백 원을 주셔야 하는데 잔돈을 천 원이 넘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저 역시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넣게 되었습니다.
"밥할매집 할머니는 늙어서 계산도 제대로 못해!"


게다가 할머니의 이러한 행동을 반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서 그 밥집 이름은 '망할매집(노망난 할매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야, 내가 잔돈 줄 테니 지폐로 바꿔 줘."
그날 이후 저를 포함해 여러 아이들이 잔돈을 억지로 천 원짜리로 바꿔 라면을 먹으러 다녔고, 천 원보다 더 많은 잔돈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날 망할매집엔 셔터가 내려졌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조회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눈 감어라."
우리는 깜짝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학교 앞 밥할매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 들어라."
순간 나는 뜨끔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그러시더니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밥할매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서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습니다.
"그 아들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더라.
다 알면서...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할매집'이라는 간판이 크게 들어왓습니다.
저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망할매집이라고 해서 죄송해요.
할머니가 노망났다고 소문내서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누룽지 먹을 떄마다 할머니 생각할게요.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자료:낮은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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