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정환 선생님, 하늘에서도 제 이야기 들리나요 -
나는 팔십이 넘은 노인네라우.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하면 다들 놀라지. 암, 놀라구 말구. 그리곤 나에게 물어. 그 나이에 정정하게 사는 비결이 뭐냐구. 그럼 나는 대답하지.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일하고, 봉사하고 살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면 살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법이니까.
요즘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어린이집에 봉사하러 가. 다 늙은이가 무슨 봉사를 하냐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어봐.
수요일하고 목요일 아침이면 나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지하철을 타지. 관절염 때문에 지하철 계단 오르내리는 게 영 시원찮아. 중간에 몇 번씩 긴 숨을 쉬어야 겨우 끝까지 올라가곤 해. 그렇게 힘든 일을 뭐하고 하냐구? 힘들긴 뭐가 힘들어. 그 날은 아침부터 기다려지는데.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고 통통한 손하며, 싱글벙글 얼굴하며, 이 나이에도 설렌다니까. 지하철 계단이 관절염에 안 좋다는 거 아는데도 아이들 만날 생각하면 좋아. 어린이집 문을 밀면 저 멀리서 아이들이 달려오지.
“이야기 할머니다.”
“할머니, 할머니.”
친손자, 외손자 할 것 없이 다 커버린 마당에 나는 새로운 손자, 손녀들을 얻은 것만 같아. 그 녀석들이 내게로 달려와서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 하는데 내가 어떻게 기분이 안 좋겠어. 너무 좋아. 좋고 말고.
어린이집 교실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야.
내가 들어서면 저 멀리서부터 한 녀석씩 내 옆으로 오지. 내 무릎에 앉기도 하고 뺨을 부벼대기도 하고. 어찌나 예쁜지 참새 새끼들 같다니까.
“이야기 들을 사람 다 모이세요!”
하고 말하면 밖에 있던 아이들까지 내 곁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고 조그만 녀석들이 몸에 엉겨 붙기도 하고 다리 위에 앉기도 하고. 내 얼굴을 조물조물 만지기도 하고.
“오늘은 화수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어요.”
“화수분이 뭐예요?”
“물이 계속 나온다는 의미예요.”
내가 하는 얘기들은 다 옛날 얘기야. ‘착하게 살아라. 지혜롭게 살아라.’ 그러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던 모습도 얘기해 주고. 애들이 말 잘 들어. 동화책 좋은 게 많이 나와도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만한 게 없나봐. 원래 이야기는 할머니들의 주특기잖아.
사람들은 내가 건강해서 이 일을 하는 줄 아는데 아냐. 나도 아픈 데가 많아. 당뇨도 있고, 백내장 수술도 두 번이나 했고, 보청기를 안 끼면 귀도 안 들려. 관절염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말이야. 그럼 왜 이 일을 하느냐구? … 주변에 노인들을 보니 다 안됐더라구. 몸은 안 좋지. 할 일은 없지. 날마다 공원에 나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살기는 싫더라구. 몸을 사용할 수 있는 날까지 멋지게 사용하며 살고 싶었어.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마음먹었지. 그런 마음을 먹은 데는 다 이유가 있어.
한참 오래 전이지. 그래 칠십 사 년 전이구먼.
주일날이었는데 부모님이 여섯 살 먹은 나를 주일학교에 보냈어. 뭐 그 당시엔 애들이 놀 데가 없으니까 다 교회에 보냈지. 그리고 그때만 해도 교회에서 해주는 레크레이션은 수준이 있었어. 친구들하고 앉아서 오늘은 뭘 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왠 뚱뚱하고 모자 쓴 아저씨가 들어오는 거야. 그러더니 우리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오늘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그 양반이 이야기하면 떠들던 아이들이 다 조용해지지.
“… 그때 호랑이가 어흥 어흥~ 했어요.”
그 양반이 호랑이 흉내를 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예배당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니까. 진짜 호랑이 같았어.
“엄마야, 엄마.”
어린 애들은 울기도 하고, 제 언니 뒤에 숨어서 빼꼼히 눈만 내밀기도 하고. 나도 ‘어흥~’ 하는 소리에 놀라 정말 호랑이가 왔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지. 뚱뚱한 양반이었는데 그 양반이 빼삭 마른 사람 이야기를 하면 빼삭 말라보이고, 새색시 역할을 하면 꽃처럼 예쁘고 수줍어 보였다니까 말 다 헌거지. 나도 넋이 나가 버렸지. 어쩌면 저렇게 이야기를 잘 할까.
그때 그 이야기 듣다가 생긴 재미난 일도 많았어. 한번은 예배당에서 지린내가 나는 거야. 나중에 보니 가까운 곳에 앉은 녀석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소변이 마려운 것을 계속 참고 있었나봐. 화장실에 다녀오면 얘기 중간 토막을 못 들으니까. 그러다가 결국 옷에 지린 거지. 이야기를 다 듣고 집에 가려는데 어찌나 냄새가 나던지 말이야. 그 후로 머리가 굵은 애들은 제 고무신에 소변을 보곤 했어.
그뿐인가. 호랑이와 곶감 얘기를 듣고 그런 곶감 사달라고 우는 애도 있었지. 아무튼 그 양반 이야기 솜씨는 대단했어. 요즘 영화는 저리 가라니까. 그 양반 이야기 들으려고 교회 안 다니는 애들도 다 교회로 모였지. 한 일 년 정도 들었나. 내가 여덟 살 되던 해 그 양반이 돌아가셨으니.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 그 양반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 이라는 것을. 나도 참 복이 많지. 그런 분의 이야기를 듣고 컸으니 말이야.
내 나이 칠십이 넘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시작했지. 처음 동기는 별 게 아니었어. 늙은 목숨이나마 남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깨달았어. 나는 지금 방정환 선생님의 빚을 갚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전하면서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나를 새삼 느끼게 됐지. 방정환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지 못했을 거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거든. 내가 방정환 선생님을 칠십 년이 넘도록 기억하는 것처럼 저 아이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그리고 혹시 아나? 내 이야기를 방정환 선생님이 하늘에서 들으시며
“어이, 학선이 잘 허네.”
그러실지.
■ 1923년 생으로 올해 나이 팔십 세인 이학선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린이가 기백명이 넘어 이제는 ‘이야기 할머니’로 불리는 동네 인기인이다.
자료:낮은 울타리
나는 팔십이 넘은 노인네라우.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하면 다들 놀라지. 암, 놀라구 말구. 그리곤 나에게 물어. 그 나이에 정정하게 사는 비결이 뭐냐구. 그럼 나는 대답하지.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일하고, 봉사하고 살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면 살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법이니까.
요즘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어린이집에 봉사하러 가. 다 늙은이가 무슨 봉사를 하냐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어봐.
수요일하고 목요일 아침이면 나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지하철을 타지. 관절염 때문에 지하철 계단 오르내리는 게 영 시원찮아. 중간에 몇 번씩 긴 숨을 쉬어야 겨우 끝까지 올라가곤 해. 그렇게 힘든 일을 뭐하고 하냐구? 힘들긴 뭐가 힘들어. 그 날은 아침부터 기다려지는데.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고 통통한 손하며, 싱글벙글 얼굴하며, 이 나이에도 설렌다니까. 지하철 계단이 관절염에 안 좋다는 거 아는데도 아이들 만날 생각하면 좋아. 어린이집 문을 밀면 저 멀리서 아이들이 달려오지.
“이야기 할머니다.”
“할머니, 할머니.”
친손자, 외손자 할 것 없이 다 커버린 마당에 나는 새로운 손자, 손녀들을 얻은 것만 같아. 그 녀석들이 내게로 달려와서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 하는데 내가 어떻게 기분이 안 좋겠어. 너무 좋아. 좋고 말고.
어린이집 교실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야.
내가 들어서면 저 멀리서부터 한 녀석씩 내 옆으로 오지. 내 무릎에 앉기도 하고 뺨을 부벼대기도 하고. 어찌나 예쁜지 참새 새끼들 같다니까.
“이야기 들을 사람 다 모이세요!”
하고 말하면 밖에 있던 아이들까지 내 곁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고 조그만 녀석들이 몸에 엉겨 붙기도 하고 다리 위에 앉기도 하고. 내 얼굴을 조물조물 만지기도 하고.
“오늘은 화수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어요.”
“화수분이 뭐예요?”
“물이 계속 나온다는 의미예요.”
내가 하는 얘기들은 다 옛날 얘기야. ‘착하게 살아라. 지혜롭게 살아라.’ 그러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던 모습도 얘기해 주고. 애들이 말 잘 들어. 동화책 좋은 게 많이 나와도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만한 게 없나봐. 원래 이야기는 할머니들의 주특기잖아.
사람들은 내가 건강해서 이 일을 하는 줄 아는데 아냐. 나도 아픈 데가 많아. 당뇨도 있고, 백내장 수술도 두 번이나 했고, 보청기를 안 끼면 귀도 안 들려. 관절염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말이야. 그럼 왜 이 일을 하느냐구? … 주변에 노인들을 보니 다 안됐더라구. 몸은 안 좋지. 할 일은 없지. 날마다 공원에 나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살기는 싫더라구. 몸을 사용할 수 있는 날까지 멋지게 사용하며 살고 싶었어.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마음먹었지. 그런 마음을 먹은 데는 다 이유가 있어.
한참 오래 전이지. 그래 칠십 사 년 전이구먼.
주일날이었는데 부모님이 여섯 살 먹은 나를 주일학교에 보냈어. 뭐 그 당시엔 애들이 놀 데가 없으니까 다 교회에 보냈지. 그리고 그때만 해도 교회에서 해주는 레크레이션은 수준이 있었어. 친구들하고 앉아서 오늘은 뭘 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왠 뚱뚱하고 모자 쓴 아저씨가 들어오는 거야. 그러더니 우리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오늘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그 양반이 이야기하면 떠들던 아이들이 다 조용해지지.
“… 그때 호랑이가 어흥 어흥~ 했어요.”
그 양반이 호랑이 흉내를 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예배당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니까. 진짜 호랑이 같았어.
“엄마야, 엄마.”
어린 애들은 울기도 하고, 제 언니 뒤에 숨어서 빼꼼히 눈만 내밀기도 하고. 나도 ‘어흥~’ 하는 소리에 놀라 정말 호랑이가 왔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지. 뚱뚱한 양반이었는데 그 양반이 빼삭 마른 사람 이야기를 하면 빼삭 말라보이고, 새색시 역할을 하면 꽃처럼 예쁘고 수줍어 보였다니까 말 다 헌거지. 나도 넋이 나가 버렸지. 어쩌면 저렇게 이야기를 잘 할까.
그때 그 이야기 듣다가 생긴 재미난 일도 많았어. 한번은 예배당에서 지린내가 나는 거야. 나중에 보니 가까운 곳에 앉은 녀석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소변이 마려운 것을 계속 참고 있었나봐. 화장실에 다녀오면 얘기 중간 토막을 못 들으니까. 그러다가 결국 옷에 지린 거지. 이야기를 다 듣고 집에 가려는데 어찌나 냄새가 나던지 말이야. 그 후로 머리가 굵은 애들은 제 고무신에 소변을 보곤 했어.
그뿐인가. 호랑이와 곶감 얘기를 듣고 그런 곶감 사달라고 우는 애도 있었지. 아무튼 그 양반 이야기 솜씨는 대단했어. 요즘 영화는 저리 가라니까. 그 양반 이야기 들으려고 교회 안 다니는 애들도 다 교회로 모였지. 한 일 년 정도 들었나. 내가 여덟 살 되던 해 그 양반이 돌아가셨으니.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 그 양반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 이라는 것을. 나도 참 복이 많지. 그런 분의 이야기를 듣고 컸으니 말이야.
내 나이 칠십이 넘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시작했지. 처음 동기는 별 게 아니었어. 늙은 목숨이나마 남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깨달았어. 나는 지금 방정환 선생님의 빚을 갚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전하면서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나를 새삼 느끼게 됐지. 방정환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지 못했을 거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거든. 내가 방정환 선생님을 칠십 년이 넘도록 기억하는 것처럼 저 아이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그리고 혹시 아나? 내 이야기를 방정환 선생님이 하늘에서 들으시며
“어이, 학선이 잘 허네.”
그러실지.
■ 1923년 생으로 올해 나이 팔십 세인 이학선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린이가 기백명이 넘어 이제는 ‘이야기 할머니’로 불리는 동네 인기인이다.
자료:낮은 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