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저자는 27장부터 야곱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야곱의 성격과 그가 어떻게 장자의 축복을 받고 도망하고 삼촌의 집에서 어떻게 제물을 모우고 또 갑자기 고향에 돌아가기로 하고 얍복강에서 씨름을 통하여 간절함의 기도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의 12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후(35장)에 야곱의 족보가 기록되면 성경의 흐름이 맞을텐데 갑자기 야곱의 형인 에서의 족보를 적기 시작합니다. 그레서 한장 전체를 에서의 후손이 한 일을 그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로 스크린을 옮깁니다. 잠간 동안 등장한 에서의 족보는 통독을 할때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36장이 의미가 있고 큰 교훈이 있기에 서로 나눌려고 합니다.
말라기 1: 3절에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었입니까?
창세기 기자는 36장 6절을 통하여 밝히고자 했습니다.
6절"에서는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자기"라는 단어를 통하여 에서는 자기중심으로 ㅅㅏㄹ았음을 말하려 합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이 사랑하신(말1:2) 야곱과 비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자기 중심으로 ㅅㅏ는 사람은 에서와 같은 성향이 있음을 교훈 하기 위해 저자는 36장을 장황하게 쓰고 있읍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산 에서를 통하여 나의 삶이 세상을 향한 지수를 파악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에서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 에돔'이란 히브리의미는 '이야 이 붉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이 생각납니다. 팟죽한그릇입니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한끼 식사 때문에 장자의 축복도 버린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는가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4-5십대는 건강식품에 목숨걸고 2-3십대는 분위기있는 식사에 목숨을 겁니다. 어떻게 좀더 잘먹을까 고민하게 되죠. 에서는 그 이름에서 부터 식탐이 넘칩니다.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고 온 정열을 바치고 살아 갑니다.
예수님은 무얼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 들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이방인 들이 구하는 대표적인 인물임을 그의 이름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6절하)갔습니다.-물질을 사랑합니다
타처로 간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두사람의 소유가 품족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하던 하나님의 축복의 땅을 떠나 타처로 장막을 옮깁니다. 제물이 많고 함께 거할 수 없다면 누가 떠나야 합니까? 야곱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입니다. 떠나려면 야곱이 떠나야 함에도 6절은 에서가 타처로 갔다고 말합니다. 형이기 때문에 아우를 사람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결국 떠났다는 것입니다. 타처는 어떤 곳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입니다. 그곳은 믿는 사람이 가서는 않되는 곳입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약속의 땅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니다.
딤후2:22 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곳을 떠나 혼자 산다는 것은 믿음생활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따뜻함과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의 몸이신 교회를 지키십니다. 그 구성원인 교회(한 몸 한몸도 작은 교회 이지만)를 지키시며 연합하여 함께 지어져가기를 원하십니다(엡2:22) 그럼에도 에서는 타처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에돔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자손을 괴롭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들어갈려고 할때 막은 족속이 바로 야곱의 형제인 에서의 후손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은혜의 장소, 축복의 장소를 떠난 에서.. 재물때문에 신앙을 파는 자들입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을 요즘에 많이 봅니다. 에서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미리부터 돈 몆푼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에서의 후손에 많은 왕들과 족장의 이름이 나옵니다. 권력을 사랑합니다.
에서는 활동적이고 힘있는 자였습니다. 사냥을 좋아하여 야곱과는 달랐습니다. 그럼으로 아마 타처로 가서도 주변에서 많은 힘을 과시하며 권력을 누렸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나 장성들의 많은 수가 교회를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금과 빛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권력을 얻기 위해 선택적으로 종교의 힘을 빌린 것을 봅니다. 교회 안에서 거듭나지 않고 중요인물이 된다면 위험합니다. 권력을 얻기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 보다 하나님이 싫어하신 바벨탑쌓는 일을 먼저 합니다.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하여 에돔을 쌓음을 흩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쌓지만 하나님은 헐리라(말1:4)고 합니다. 권력을 쫒는 사람들은 황페하고 ㅅㅏ막과 같은 삶이 됩니다. 에서의 족보는 어떻게 보면 화려합니다. 그러나 바벨탑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무너뜨려 버릴 것입니다.
야곱이야기로 돌아가서 결론을 맺습니다. 야곱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에서만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야곱도 벧엘과 엘 벧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야곱" 이 단어가 모든 것을 대변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옵니다. 그리고 엘벧엘(35장)에서 결정적인 신앙의 회복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만나고 처음 교회나올때는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은혜는 다 빠지고 다짐만 돌처럼 남아서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무거운 짐이 됩니다. 다짐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만 사랑하십시오. 예수님만 죽도록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그의 능력으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야곱은 말년에 엘벧엘의 신앙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에서의 족보는 세상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 지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말라기 1: 3절에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었입니까?
창세기 기자는 36장 6절을 통하여 밝히고자 했습니다.
6절"에서는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자기"라는 단어를 통하여 에서는 자기중심으로 ㅅㅏㄹ았음을 말하려 합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이 사랑하신(말1:2) 야곱과 비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자기 중심으로 ㅅㅏ는 사람은 에서와 같은 성향이 있음을 교훈 하기 위해 저자는 36장을 장황하게 쓰고 있읍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산 에서를 통하여 나의 삶이 세상을 향한 지수를 파악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에서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 에돔'이란 히브리의미는 '이야 이 붉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이 생각납니다. 팟죽한그릇입니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한끼 식사 때문에 장자의 축복도 버린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는가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4-5십대는 건강식품에 목숨걸고 2-3십대는 분위기있는 식사에 목숨을 겁니다. 어떻게 좀더 잘먹을까 고민하게 되죠. 에서는 그 이름에서 부터 식탐이 넘칩니다.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고 온 정열을 바치고 살아 갑니다.
예수님은 무얼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 들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이방인 들이 구하는 대표적인 인물임을 그의 이름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6절하)갔습니다.-물질을 사랑합니다
타처로 간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두사람의 소유가 품족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하던 하나님의 축복의 땅을 떠나 타처로 장막을 옮깁니다. 제물이 많고 함께 거할 수 없다면 누가 떠나야 합니까? 야곱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입니다. 떠나려면 야곱이 떠나야 함에도 6절은 에서가 타처로 갔다고 말합니다. 형이기 때문에 아우를 사람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결국 떠났다는 것입니다. 타처는 어떤 곳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입니다. 그곳은 믿는 사람이 가서는 않되는 곳입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약속의 땅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니다.
딤후2:22 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곳을 떠나 혼자 산다는 것은 믿음생활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따뜻함과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의 몸이신 교회를 지키십니다. 그 구성원인 교회(한 몸 한몸도 작은 교회 이지만)를 지키시며 연합하여 함께 지어져가기를 원하십니다(엡2:22) 그럼에도 에서는 타처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에돔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자손을 괴롭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들어갈려고 할때 막은 족속이 바로 야곱의 형제인 에서의 후손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은혜의 장소, 축복의 장소를 떠난 에서.. 재물때문에 신앙을 파는 자들입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을 요즘에 많이 봅니다. 에서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미리부터 돈 몆푼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에서의 후손에 많은 왕들과 족장의 이름이 나옵니다. 권력을 사랑합니다.
에서는 활동적이고 힘있는 자였습니다. 사냥을 좋아하여 야곱과는 달랐습니다. 그럼으로 아마 타처로 가서도 주변에서 많은 힘을 과시하며 권력을 누렸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나 장성들의 많은 수가 교회를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금과 빛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권력을 얻기 위해 선택적으로 종교의 힘을 빌린 것을 봅니다. 교회 안에서 거듭나지 않고 중요인물이 된다면 위험합니다. 권력을 얻기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 보다 하나님이 싫어하신 바벨탑쌓는 일을 먼저 합니다.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하여 에돔을 쌓음을 흩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쌓지만 하나님은 헐리라(말1:4)고 합니다. 권력을 쫒는 사람들은 황페하고 ㅅㅏ막과 같은 삶이 됩니다. 에서의 족보는 어떻게 보면 화려합니다. 그러나 바벨탑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무너뜨려 버릴 것입니다.
야곱이야기로 돌아가서 결론을 맺습니다. 야곱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에서만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야곱도 벧엘과 엘 벧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야곱" 이 단어가 모든 것을 대변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옵니다. 그리고 엘벧엘(35장)에서 결정적인 신앙의 회복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만나고 처음 교회나올때는 많은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은혜는 다 빠지고 다짐만 돌처럼 남아서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무거운 짐이 됩니다. 다짐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만 사랑하십시오. 예수님만 죽도록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그의 능력으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야곱은 말년에 엘벧엘의 신앙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에서의 족보는 세상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 지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