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의 회심
1735년 10월 대서양 한가운데에는 존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 형제가 탄 배
가 미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옥스포드의 엘리트들로서 미국에
있는 야만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서양
에는 심한 폭풍이 몰아닥쳤습니다. 급기야 그 배는 침몰 직전에 이르렀고 두
형제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본 것은, 평화 속에 찬송과 기도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는 26명의 모라비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살아 남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2년에 걸
친 조지아 선교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웨슬리는 공허
한 마음으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확히 말하자면 19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 전, 웨슬리는 길가
의 한 집에서 들려 오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는..."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가슴은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그 회심의 순간
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만을...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죄와 죽음
의 법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웨슬리 한 사람의 경험
은 암흑과도 같았던 영국의 상황을 복음과 새로운 도덕으로 변화시켜 갔으
며, 그 신앙의 불길은 전세계로 퍼져서 감리교회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
다.
*인간성 회복
오늘 우리는 인간성이 극도로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할 공복들을 비롯하여 선량한 시민들과 나라의 소망이어야 할 처오년들과 어린아이들까지 생명을 유린하고 파괴해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다.
유해식품 제조,인신매매, 폭행,고문등은 인간 존엄성 경시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작 병리현상이라고 하겠다.
인간성 회복의 필요성을 너도 나도 부르짖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투쟁과 혁명과 사회개조에 의한 인간성 회복을 외치고 있으며 정부는 시회정의와 사회복지에 의한 인간다운 삶을 구호처럼 내세우고 있다.참다운 인간성 회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란 도데체 어떤 존재인가? 창세기의 인간 창조 기사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과 같은 육체적 요소로만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요소를 부여받아 살게된 독특한 영적 존재이다.
창세기 2:7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했다. 생기는 하나님의 신을 말한다.
인간이 참된 인간 즉 영적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하나님의 신을 받아 만들어진 사람은 동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품성을 지니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사랑하는 마음,기뻐하는 마음, 존귀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의로움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창세기는 그 초두에서 부터 인간성의 타락을 기술하고 있다. 아담과 카인의 범죄이후 거짓과 두려움, 미움과 시기, 분노와살인, 탐욕과 정욕,포악과 강포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인간성 타락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여호와의 앞을 떠난데]있었고 그결과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시지 않게 된 것이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을 육체가 되었다(창6:3)고 기술했다. 또 [마른뼈](겔37:2)와 같이 되었다고 묘사한다. 하나님을 떠난 대다수의 현대인도 이와같이 육체가 되었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마귀의 모습을 닮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게서는 소망이 없는 타락한 인간에게 인간성 회복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 길은 다른 길이 아닌 하나님의 신을 타락한 인간에게 다시금 부어 넣는 길이라고 밝히 예언하셨다.
마른 뼈 무더기 인생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5)고 하셨고,[그 후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너희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리라](요엘2:28)고 말씀하셨다.
그 약속이 2천여년전 오순절난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졌다.
십자가 사건후 50일이 되는 날 하나님의 신이 바람같이 임하여 한 곳에 모여 잇던 120명의 신자들의 몸과 영혼속에 부어졌다.
저들이 모두 생령이 되었다. 참된 의미에서의 인간이 된 것이다. 사랑이 회복되고 평안과 기쁨이 다시금 넘치게 되었고 의로움과 거룩함이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신 인간성 회복의 사건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사마리아에서,가이샤라 고넬료의 집에서,그리고 에베소와 빌립보에서도 계속하여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조나단 에드워드나 죠지 휘트필드같은 전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는 영적 각성 운동과ㅣ 인간성 회복의 운동및 사회계혁의 운동을 일으키셧다.
1907년에는 어두움과 절망에 쌓여 있던 한국백성들 위에 하나님이 또다시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는 영적 각성 운동과 인간성 회복운동을 일으키셨다.
인간성이 극도로 타락한 오늘의 시대야 말로 하나님의 신의 부음을 받는 새로운 영적 각상 운동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오직 영적 각성 운동만이 타락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의 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신다.
- 합동신학교 교장 김 명혁 목사 -
*감옥에서 거듭난 삶
한때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서 닉슨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챨스 콜슨 박사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가
출옥 후 간증하기를 "4년동안 매일 아침 대통령 중심으로 12명의 참모들이
모여 세계를 요리한다는 자부심에서 열띤 회의를 가졌으나 돌이켜 보면 세
계는 변함이 없었고 내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났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어떤 정책이나 철학, 폭
력도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이 인간을 변
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보
수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직 감옥전도에 전 생애를 바치겠노라고 결심했다.
*평양 깡패 이기풍목사
초대 선교사 마포삼열 목사는 밤만 되면 불량배들과 유생들의 돌세례로
곤혹을 치르곤 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 깡패로 알려진 이 기풍이었다.
그는 잔치집마다 찾아다니며 술과 떡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던 깡패였는
데 마포삼열 목사의 집에도 끈질기게 찾아와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그의 행패는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때는 그가 던진 돌에 맞아
입원하기도 했다. 하루는 선교사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던 이 기풍이가
다치게 되었는데 선교사가 찾아가서 치료를 해 주었고 사랑을 베풀었다. 이
에 감복하여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평양신학교를 나와 초대 목사
가 되었고, 초대 제주도 선교사를 파송을 받았다. 그는 일생 호남지방에서
목회하다 여수 돌산 앞 우학교회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했다.
*자유 얻는 방법
의심과 감정이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
떤 숙녀는 이것을 행하는 매우 실질적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의혹이 떠
오를 때면 그녀는 그 의혹에 관해 말해 주는 성경구절을 찾습니다. 그 구절
울 종이에 옮겨 적어서 의심이 생겨날 때에 그다는 그 성경 구절을 인용하
여 반복해서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녀가 낙심해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구세주로 맞아 들였을 때 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고 확신하
느냐?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스며들곤 합니다. 그럴 때 그녀는 성경에
서 요일5:14-15 구절을 찾았습니다.그녀는 이것을 베껴 쓰고 그 밑에 "1969
년 1월 14일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이 나의 삶 가운데 들어 와서
나의 구세주,나의 주님이 되시기를 원한다.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계획과 나
의 삶을 위한 주님의 뜻과 합당하므로 들어주실 줄 믿는다."라고 적었습니
다. 그녀는 그 종이를 침실 거울에 붙여 놓고 의혹이 생겨날 때마다 그 종
이 쪽지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것이다! 나는 내가 거듭났음
을 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음을 알고있다. 내가 바로 그날 하나님
의 아들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으니 다시는 방황하지는 않는다."그녀가 어
떤 일에 죄책감을 느낄 때 그녀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 가에 의심이 생기면 그녀는 성경 요일 1:9를
적었습니다. 그 아래에 그녀가 고백한 죄를 쓰고 날짜와 "할렐루야 내 좌가
사하여졌다"고 적어 넣었습니다. 점차로 그녀의 의심은 사라져 깨끗해졌습
니다.기도 응답과 날짜를 적어 놓고 하나님의 언약을 가리키는 성경 구절을
써넣는다면 여러분은 의심과 감정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이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고백을 꺼리는 것
한 여자가 더러운 빨랫감을 세탁하기 위해 강둑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여
자는 빨랫감이 더러운 것을 누가 볼까봐 두려운 나며지 빨랫감을 밖으로 내놓
지 않았다. 그녀는 창피스럽게 여겨 빨랫감을 물 속에 집어넣고 단지 아래 위
로 몇번 비비기만 하고는 거의 그대로 집으로 가져 왔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어리석은 여자와 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많은 잘못을
저지른 후 그 죄를 씻기 원하지만 그 죄들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고백
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죄와 도적질, 거짓말, 욕심, 증오심 등을 덮어 버린다.
그러나 누구든지 모든 죄들을 드러내놓고 회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때
서야 비로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hina's
Millions)
*눈물
기도하면 절로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기도하면
자기의 죄가 깨달아 지고 절로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게 된다. 크리스
소톰(John Chrysostom)은 성도에게 눈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렇게
설명했다."죄의 불꽃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눈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왜냐하면 눈물은 허무의 용광로를 끄며 죄의 상처를 깨끗하게 하
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성격상 눈물 따위하고는 거리 만 사람이야"
하고 "현대의 이성적인 남성인데 울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나와 상관없
어" 하고 덮어 둘 문제가 아니다. 육신 적인 죽음과 남의 슬픔이나 연
속극 앞에서는 쉽사리 감동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영혼의 슬픈 모습
이나 죽어 있는 영혼의 상태 앞에서는 어찌 그리 태연 할 수가 있단 말
인가?그것은 지금 까지 기도를 외면하거나 영혼을 위한 깊은 애통이 없
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사람에게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도전한
다."습관이 습관을 극복한다."겉으로 눈물을 흘릴 수 없을 때 하나님 앞
에서 속으로 눈물을 흘리자. 영혼의 마음이 애통하는 자가 되자. 그리하
여 눈물의 세례를 받는 자가 되자.내게 왜 기도가 없는지를 걱정하고
왜 나는 기도할때 눈물이 없는지 근심하는 자가 되자. 영혼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자가되자."눈물이 눈에서 줄줄 흘려 내리는 그 이유를
이제 아실 것 같소?나를 위로해 주는 이 하나도 없다오 원수들이 우리
를 정복해 버려 남아 있는 우리 동포 찾을 길 없다오"(현대어 성경 애
1:16)
* 속죄의 개념에 대한 이해
컬럼비아 북쪽에서 멕시코 만으로 뻗어나간 갈라진 땅에 사는 꼬아
지로 인디언의 성경은 '사함'을 죄는 지나가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
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죄는 지나가고 다시 더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
미다.
아이보리 해안의 빠울리 족은 '죄를 떠나가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
을 사용한다. 또한 멕시코의 후이촐 족은 '하나님께서 죄를 취해 가
시는 것'이라 한다. 라이베리아의 케펠 족은 보다 인간 주체적인 관
점에서 사함을 '죄에서돌아서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죄
를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를 비난하
는 것으로부터 돌아선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그 사하시는 행동에서 우리의 죄의 주의를 기울이시는 것
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서 등을 돌리시고 참
된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사악한 사람
위대한 스코틀랜드 설교가였던 알렉산더 화이트는 한 회중집회에서 이
렇게 말했다.
『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사람들은 호기
심을 갖고 다음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는 잠시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알렉산더 화이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자신이 죄인중의 괴수라고.자신이 주앞에서 죄인
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 영적 혁명인 회개
일본의 성서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딸 미요꼬와의 탁상담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아직 죄에 대한 회개를 하
지 않아서 글렀어. 이것은 이상한 것으로, 실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
는 기분이 일어나 그때부터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렇게는 나쁜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있는 동안은 아직도 먼 것으로,
자기에게는 아무런 좋은 데가 없고, 다만 은혜로서만 살아있다고 느끼
게 되지 않으면 안된단. 그렇게 되면, 진정, 겸손한 마음이 생겨 사람
의 죄를 비난하는 일이 없어진다.
죄의 회개를 한후에도 성도내고 분통도 터뜨리지만 그 결과는 전과
는 천양의 차가 있는 것으로 곧 상대를 용서할 마음이 들게된다. 결코
언제까지 원심을 갖고 있지는 않는게야. 달리 말할 수 없으므로 회개
라 하지만 이것은 실로 심리적혀명인 것이다. 이것만은 부모가 자식에
게 가르쳐줄 것이 못되고 남편이 아내에게 권할 것이 못되는 것이지,
모두가 기도하여 이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회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
은 죄인이라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
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그리고
당신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다.
" 자디잔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밧
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다.
그러나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러기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
도 놓았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
쩔매고 있었다.
"바로 그거요!"목사가 소리쳤다.
"하나님께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
다는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주워온 돌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듯이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
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교회 부흥의 원리
1907년 한국교회에 부흥에 불이 붙게 된 것은 어느 부흥집회에서 모든 성
도들이 죄를 고백하게 된 것에서부터 였다. 이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던 사람
은 부흥사로서 유명한 길선주 목사였다는데 1주일 동안 계속되던 부흥집회
마지막 날에 길선주 목사가 회중 앞에 나서더니 "나는 인간입니다. 하나님
은 이놈때문에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죄를 고백합니다. 1년전
병들어 죽게 된 내 친구 한 사람이 나를 불러 그가 죽은 후 모든 일들을 맡
아 처리해 달라고 하면서 죽었는데 그가 남긴 가산을 정리하던 중에 2백원
을 내 소유로 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에 그 친구의 부인을 찾아
가 훔친 돈을 갚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 말은 모든 회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순식간에 온회중의 통회가 불일듯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자
신의 죄를 자복하였고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죄를 고백하는 데에 성령
이 임하시고 교회의 부흥도 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 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하고 말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다시 그곳을 지나다가 아직 살아있는 그 장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었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여자의 도벽
어느 한 백화점의 집계에 의하면 여성들의 도벽(盜癖)이 연간 10퍼센트 내외의 상승추세에 있다고 한다. 적발된 경우만 보아도 83퍼센트 이상이 중 상류급의 생활 수준이요, 또 훔친 물건이 값비싸거나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한다. 이 부인들의 도벽증가와 오늘날의 사회심리와 어떤 연관관계는 없는 것일까.
성적 흥분과 맥락된 절도행위를 성병리학(性病理學)에서는 '클렙토마니아'라고 한다.
콜린 윌슨은 그의 '성의 충동(衝動)'에서 이 클렙토마니아의 실례를 소개하고 있다. 시카고의 살인소년(殺人少年) 윌리엄 하이렌즈는 열두 살 무렵부터 여자의 속옷을 훔치는 일에서 성적인 흥분을 느끼기 시작, 열세 살에 상습절도자로 전락하고 있는데, "열려 있는 창만 보아도 발기현상이 일어난다"고 고백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쓸 때의 스릴, 들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 등과 같은 심리적 맥락이 섹스의 자극에 직결되는 것 같다. 이 소년은 자기 방에 3백 점의 팬티, 콜세트, 슈미즈, 양말을 수집해 놓고 있었다 한다.
도벽과 에로티시즘의 연관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비일비재하다. 새디즘의 장본인인 새드의 '악덕(惡德)의 영화(榮華)'에서 여주인공 줄리엣은 인생 최고의 쾌락은 색(色)과 도(盜)가 합일하는 순간이라는 색도철학(色盜哲學)을 실감나게 실천하고 있다.
장 주네의 '꽃의 노틀담'의 주인공 미뇽도 백화점에서 담배 케이스를 슬쩍 하다가 들키는 순간, 몽정(夢精) 직후 같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이 병적인 도벽이 심해지면 이성(異性)의 육체에서 신체의 일부를 강탈하여 수집하는 변태로 발전하는데, 이를 '콜렉트마니아'라고 한다. 머리카락 같은 특수부위의 발모(髮毛)만을 뽑아 수집한다든가, 이빨을 뽑아 수집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배비장전'에서 비장의 이빨을 빼어 갖는 애랑이도 콜렉트마니아랄 수 있다. 일제 때까지만 해도 기방(妓房)에는 자신에게 정을 주었던 사람들의 이빨을 경대 빼닫이에 수집해두는 기생이 적지않았다 한다. 주인공 이름을 적어둔 그 이빨을 꺼내보고 한숨 쉬는 노기(老妓)를 읊은 시까지도 있다.
물론 백화점의 상습적인 여자도벽은 속옷 나부랑이만을 훔치는 남자의 변태적 도벽과는 같을 수 없으나 훔칠 때의 스릴이나 불안은 분명히 성적 흥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일상적으로 정서가 불안정하거나 성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사는 보람을 찾지 못하는 일종의 현대병이 도시의 유한층(有閑層)에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늘어가는 여자도벽이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간음하지 말라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에서는 하루 동안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하루에 새로 태어나는 9,077명의 아기 중 1.282명은 사생아이며,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고, 1,986쌍이 이혼하다.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집
을 나가고, 하루 69,493명의 십대들이 성병에 감염된다. 강간은 매 8분마
다, 살인은 매 27분마다, 강도는 매 78초마다 일어나고, 절도는 매 10초마
다 일어나며, 자동차는 매 33초마다 분실된다. 그리고 하루에 2,740명의
십대 소녀들이 임신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가정의 초대 불
행은 75%가 십계명 중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
에 생긴다고 한다.
*회개3
미국 어느 도시에 사는 남매 메리와 존이 주말에 시골의 할머니댁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존은 삼촌이 선물로 사준 고무총을 가지고 가서 이것저것 쏘는 연습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오리가 걸어오는 것을 본 존이 고무총을 겨누고 오리의 대가리를 명중시켜서 오리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존은 겁이 났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죽은 오리를 가지고 큰 나무 밑에 파묻고 낙엽으로 가리워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가리워놓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근거리고 두려워서 할머니께서 잘 준비하신 저녁 식사도 하는둥마는둥 하였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눈만 감으면 할머니가 보이고 죽은 오리가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할머니를 보면 공연히 무섭기만 하고 도무지 괴로워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존은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잘못한 바에는 할머니께 말씀드려서 벌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한 존은 할머니 방에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존은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존을 안아주시면서
존, 착하다. 내가 네 잘못을 다 용서해주마. 사실은 어제 오후에 이층에 있으면서 네가 하는 일을 다 보았단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나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무 걱정말아라. 내가 다 용서했다.
죄사함 받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회개할줄 모르는 인간의 죄악성
로마의 네로 황제야말로 악을 가장 많이 행한 사람이다. 그
는 자기 어머니와 부인도 살해했고 의심이 많아 부하를 2백여명
이나죽였다. 또 시를 쓴다는 명목으로 로마 시를 불질러 쟀더
미로 만들기도했다. 그는 결국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해 쫓
겨 새벽에 비를 맞으며 궁궐을 빠져나가 휴온이란 신하의 집으
로 피신했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충성했던 신하들이 자결하라
고 권면했을 때 그는 "내 무덤을 만들어 주고 묘비를 잘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면 자결하겠다."라고 했다.
로마의 원로원은 네로를 잡아 발가벗겨 시내를 돌게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그 내용을 통보했다. 그는 자결하라는 휴온의
강력한 권면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혹시 우리를 도울 자
가 올지 아냐?" 하며 미련을 버 리지 않았다. 보다못한 신하가
"남자답게, 명예스런 로마인답게 자결하라"라고 을박지르
자칼을 빼 자기 목을 찔렀으나 칼은 빗나갔다.
그러자 네로는 목을 감싸고 울었다. 이 때 황제의 비겁한 모
슴을 본에바브로가 네로의 목을 치자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31세의 나이로 14년간의 폭정을 끝내고 부끄러
운 삶을 마감했다.
* 낚시금지
"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서 7:19)
언젠가 무디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감추는데는
사람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
리의 죄를 감추려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주님께 맡긴다면 마귀나 사람들이 다시는 이들을 찾
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같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이 원리는 분명히 정확
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일때 이 죄들은 완전히 그리
고 영원히 없어집니다. (이사야 43:25) 걱정에 빠진 신자여, 주님께서용
서하신 과거의 죄를 낚아 올리려 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합
니다. 우리의 죄는 낚시의 줄이 닿을수 없는 바다 깊숙히 던져졌고 (마가7:19),
주님은 더이상 그 것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8:12)
명상: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때는 모든 것을 잊으신다.
* 히틀러 경호원의 고백
히틀러의 경호원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다.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
시려고 하던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다읽게 되었다.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다.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회개와 신앙부흥(Shuv의 뜻)
신앙부흥은 단지 성전의 문을 열고 그곳에서 예배하는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 신앙부흥을 위해서는 이러한 외적인 경건행위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신앙부흥에는 반드시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방향전환은 이중적이다. 첫째는 죄에서 90도를 돌이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금 90도를 돌이키는 일이다.
돌이키다 혹은 회개하다라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슈브(shuv)'로 발음된다. 이 단어가 신앙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118회 모두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떠밀려고"(영어로 shove)하셨다. '슈브'라는 단어가 일찌기 예언적으로 사용된 예를 사무엘의 통치하에서 일어났던 신앙부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역대의 모든 선지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회개(따돌이킴)에 대해 언급하였으며,그들의 사역의 정수로서 회개 행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슈브'는 예언자들의 전체 사역을 요약하는 유일한 표현이 될 것이다.
a.
회개에는 두가지 국면이 있다고 했다. 돌아오다(구약에서 약 1.056회 발견됨)라는 단어는 신앙적인 의미로 118회 사용되느데 그 가운데48회는 '---에게(to)', '----에게로(unto)'라는 조사와 함께 , 그리고그 대상으로서 보통 '주(Lord)'라는 단어와 함께 나온다. 이것은 회개의 적극적인 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인 행위에 앞서서 우리가 악과 죄로부터 돌이키는 소극적인 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돌이키다' 혹은 회개하다라는 단어가 '---로 부터'란 조사와 함께 40회 나온다. 두 국면 모두 가 필요하다. 사실 라튜봇巾어원에서 알려진 것처럼 돌이킴 혹은 회심이라는 단어는 우리가죄로 부터 돌이켜 주님께로 향하는전 과정을 말한다.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을 내포하는 첫번째 행위는 '회개'라 불리워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손을 내미는 두번째 행위는 '믿음'이라 불리워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에대한 믿음에 이르는 방식이며 그와 동시에 우리가 계속하여 믿음으로 사는 방식이다.(147)